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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이런 영웅은 싫어

[염호다나] 나의 다나

 

때론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사실을 망각할때가 있다. 단지 드러내지 않았을 뿐인데, 사람은 때론 보이는 것만을 믿고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있는 것에는 믿음을 갖지 못한다. 지금 염호의 상황 역시 그러 하였다.

 

 

 

[염호다나] 나의 다나

written by 슈가펌킨

 

 

 

사건을 설명하기에 앞서, 염호와 다나는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이다. 물론 같은 서장의 위치로서 한참 오래전부터 함께 얼굴을 마주한 사이이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동료일때와, 연인일때 그리고 부부일때는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그런점을 알고있기에 인연을 맺는 것이고, 다나와 염호 역시 서로의 곁을 지키며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기에 결혼을 했다. 물론 결혼을 한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는 커녕 매일 아침마다 행여나 꿈은 아니었을까 가슴을 쓸어내리는 염호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쉬도 때도 없이 밀려들어오는 업무들이었다.

 

도대체가 무슨 사건사고가 이리도 많은건지 아름다워 보이기만한 세상의 표면과는 다르게 시시각각으로 이곳저곳에서 사건이 터지고있었다. 물론 그 업무의 책임은 모두 염호와 다나의 몫이 되기 마련이었다. 하.. 어째서 사람들은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가.

 

" 이래뵈도 신혼이라고… "

 

도대체 누구한테 말을 하는건지, 염호의 한맺힌 한마디는 듣는이 없이 공기중으로 흩어졌다.

 

지금 시간은 오후 11시 다나의 얼굴을 못본지도 벌써 14시간째다. 내일 역시 마찬가지겠지.. 런닝머신 위를 뛰는것 마냥 반복되는 일상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염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그래 집에가면 다나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가뭄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의 꽃처럼 염호는 작은 기쁨을 생각하며 입가에 작게 미소를 그렸다. 그 기쁨도 잠시. 사건은 이곳에서 터져버렸다.

 

집 근처에 다다르자 어디선가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웃음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다나였다. 문제는… 다나의 옆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이 '남자' 라는 점이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눈가에 부드러운 곡선까지 그려가며 웃는 다나를 보며 염호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는듯 했다.

 

' 아니야 설마 집앞에서 대놓고 바람을 피겠어? 다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혹시라도.. '

 

그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의심부터 자책까지 염호는 지금 자신이 보고있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려야할지 도무지 감조차 잡히지않았다.

 

' 그래. 여기서 혼자 생각한들 뭐가 달라지겠어. '

 

현명하다면 현명한것이고, 무모하다면 무모한것이 틀림없었지만 염호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 상황에 대한 해명을 듣고싶었던 염호는 떨리는 손을 주먹 쥐어 가린채 그 두 사람에게 걸어갔다.

 

염호를 가장 먼저 발견한것은 다름아닌 다나였다. 반나절만에 재회한 두사람이었다. 평상시라면 안부도 묻고 이것저것 제법 이야기를 나눌법도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염호에게는 그런 일상의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제일 먼저 입밖에 나온말은 인사도, 안부도 아닌 추궁의 말이었다.

 

" 누구야? "

 

사실 너의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진실이든 진실이 아니든 나는 그저 이 상황에 네가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 아- 내 동창이야. 인사해 여기는 내 남편이야. "

 

" 그러시구나- 이야기 자주 들었어요.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다나 동창되는 사람입니다. "

 

" … "

 

도대체 무어라 입을 열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수가 있는거지? 염호는 저 낯짝에 당장이라도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것을 끝내 꾹꾹 누르며 침묵을 유지했다. 눈치가 있기는 있는건지 그런 염호의 상태를 눈치챈 다나의 동창은 비꼬듯이 이야기를 했다.

 

" 다나야 네 남편분 기분이 안좋으신거같은데 이만 들어가봐.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설마 이런 일로 기분 나쁘신건 아니겠지요? 그럼 이만- "

 

분명하다. 분명해. 분명 저 사람은 남 기분나쁘게 하는데에 있어서 도가텄음에 틀림없다. 사람속이란 속은 다 긁어 놓고 유유히 사라지는 저 뒷모습을 보고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 오늘은 좀 늦었네? 일이 많았던 모양이지? "

 

나긋나긋한 음성. 하루종일 보고싶던 얼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염호는 방금 전 자신이 겪은 일때문에 쉽사리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아니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다나의 반응을 보아서는 그 동창이라는 놈과 그렇고 그런사이가 아니라는것 쯤은 자신 역시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동창이라는 놈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분명 마음이 있는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염호는 자신이 본의 아니게 다나의 말을 무시하고있음을 깨달았다. 허둥지둥 입을 열려던 찰나에 이 긴 침묵을 꺤것은 다름 아닌 다나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아주 화가 나있는듯한..

 

" 야 "

 

" … "

 

" 너는 도대체가.. 하.. 아니다 "

 

 

*

 

 

모르고 지냈다면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일이겠지만, 이미 알아버린이상 어쩌겠는가. 염호는 자꾸 어젯밤일이 떠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문자 그대로의 아무것도. 염호는 이런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아내를 의심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고, 또 이런 상황을 만든 그 동창놈이라는 녀석은 더더욱이 싫었다. 염호는 한손을 눈가에 가져가 두눈을 지긋이 눌렀다.

 

" 후… "

 

이런 순간에 까지도 다나가 보고싶다니.. 이건 뭐 완전히 잡혀사는 거잖아? 물론 그것에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은 다나가 먼저 질투해주고 또 애정표현을 해줬음 하는 염호였다. 그러기에는 자신이 다나를 너무나도 좋아하는거 같지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염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적지는 단 한곳. 뻔하디 뻔한 곳이겠거니 생각하던 그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아내, 다나가 있는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그래. 어제일은 어쨌든 내 잘못도 크니까 다나에게는 솔직하게 미안하다고 해야겠지. 크게 두어번 쉼호흡을 한 염호는 다나가 있는 서장실의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잡고 문을 열었다.

 

" 다나 어제는 내가.. 어..? "

 

염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있는 모습은 다나 하나만이 아니었다. 두사람. 설마했지만 그러기에는 자신의 시력이 너무나도 정확했다. 뭐 호랑이니까. 아무튼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문제는 어째서 저 동창놈이 이곳에 있냐는것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것이 그쪽에서도 예상 밖의 일이었는지 동창쪽 역시 놀란듯 해보였다. 물론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은건지 바로 표정관리를 했다지만, 괜히 경찰청 서장님이겠는가 그런 사소한 변화를 놓칠리 없는 염호였다. 그래.. 당황했다 이거지? 그렇다는것은 공적으로 다나를 만나러 온것이 아닐터였다.

 

하 참나. 염호는 어이가 없다못해 기가막혔다. 어제와 같이 화가 날법도했지만, 너무나도 거지같은 지금상황에는 화를 낼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했다.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다나는 한숨을 쉬며 염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여긴 뭐하러 왔어? "

 

뭐하러 오긴 뭐하러오겠는가. 남편이 아내를 보러오겠다는데 원래 구실이 필요한건가? 하는 염호였다. 딱히 뭐라고 둘러댈 말도 없었기에 염호는 " 아니 그냥.. " 이라고 말을 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아니 나 이거 진짜 화내도 되는 상황 맞는거지? 염호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찰나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것은 다름아닌 귀능이었다. 얼마나 급한상황이면 노크도 없이 그냥 들어왔겠는가. 뭔가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챈 다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귀능이는 다나를 문쪽으로 인도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 서장님! 백모래가..! "

 

" 에이씨 "

 

귀능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나는 낮게 욕을 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물론 귀능역시 그런 다나의 뒤를 따라 문을 닫고 나갔다. 하하 오늘도 스푼은 바쁘네. 다나에게 뭔일이라도 안생겼음 좋겠는데. 물론 자신의 아내는 강하지만 그거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태평한 소리를 할때가 아니라는 자각이 들자 염호는 자신 역시 현장으로 출동하기 위해서 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건 핑계였고 사실은 이 재수없는 동창놈과 함께있자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저벅 저벅

 

염호가 문가에 다다르자 고요한 적막을 깬건 다름아닌 그 동창이라는 놈이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멜론기업 총 책임자를 맞고있는 사람입니다. 그때 소개했다싶히 다나의 동창생이죠. 그리고.. 당신은 경찰청 서장인 염호 서장 맞으시죠? "

 

능글맞게 웃는거 하고는. 염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멜론기업이라.. 엄청 큰 기업 아닌가? 아무렴 뭐 어쩌란건지… 염호는 천천히 뒤를 돌아 팔짱을 끼며 말했다.

 

" 잘 알고있네요. "

 

염호는 기분이 매우 나빴다. 한낱 인간 주제에..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개긴단 말인가. 자신이 사적인 자리에서 무슨짓을 당하든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아내 '다나' 한사람이 유일했다. 자기 입장은 알고 저런 말을 하는건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자 동창이 움찔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앗차 자신도 모르게 위협을 한 모양이었다. 크게 소란을 피울 생각이 없던 염호는 고개를 들어 계속 이야기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 저.. 저는 다나에게 무엇이든지 해줄 수 있습니다. 지위면 지위, 돈이면 돈. 그리고 저택의 안주인 소리를 들으며 평생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당신과는 다르게 말이죠. "

 

어째서인지 마지막 말에 강세가 들어있는듯 했다. 아무렴 상관없지. 내뱉고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적대감을 내비췄다.

 

" 그래서 뭐 지금 이혼이라도 해라? 그 소린가? "

 

" 그리고! 저는 당신 못지않게… 아니 당신보다도 훨씬 더 다나를 사랑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

 

" 그래? 그거 유감이네. 미안하지만 다른건 다 니 말이 옳을지도 몰라도 그건 아니야. 너같은 놈에게는 절대 안지지 안그래? 남의 여자나 빼앗으려고 하는 주제에 너무 당당하다는 생각은 안들고? "

 

염호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띄었다. 어느 한계의 분노를 넘어서자 찾아오는건 냉정함 뿐이었다. 눈앞에 있는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도 그 후에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할까 하며 빠르게 돌아가던 머리도. 모두 차게 식어 그저 저 입에서 어떤 개소리가 더 나올까? 하는 기대감 마저 들게 만들었다.

 

" 그러니 다나의 미래를 위해서도 다나를 포기해 주시죠. 좋은 아가씨라면 얼마든지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바쁘다며 자리를 떠버리는 동창이었다. 뭐? 소개를 해줘? 다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유일무이한 존재인지 안다면 그런 말은 절대로 나올 수 없었다. 그런 놈에게 다나를 빼앗기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

 

 

동창놈이 자리를 떠난 후에 염호역시 빠르게 본사로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본인은 서장이었으니까, 개인적인 업무로 - 그것도 자신이 아내를 만나러 간다는 팔불출 같은 이유로 - 자리를 오래 비울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서류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게 눈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삼각관계인가? 그런건가?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해보였다.

 

본인 주장이지만, 모든것을 다 가졌다는 동창놈과는 다르게 자신이 가진것은 고작 경찰서장이라는 지위와 다나의 남편이라는 타이틀 뿐이었다. 그 타이틀 마저 위태위태 하다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다나를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나의 미래라니, 그를 위해선 자신 역시 고민을 해봐야할 필요가 있었다. 너무나도 좋아하니까. 네가 행복해지기를 누구보다 바라니까. 물론 결정은 다나의 몫이고 자신은 그 결정에 그저 따를 뿐이겠지만 말이다.

 

분명 아까 스푼에 있을때까지만 해도 절대로 그런놈에게 다나를 빼앗길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이런저런 생각 끝에 뺏길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나오자 한없이 우울해지는 염호였다.

 

그때였다.

 

쾅쾅쾅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염호는 깜짝놀라 문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자신의 비서가 매우 놀란 표정으로 염호에게 말헀다.

 

" 서.. 서장님! 아내분이..! "

 

" … 어디 병원이야. "

 

" 하지만.. 곧 공식 기자회견이 열립니다. 이번 자리에 불참한다면 상부는 물론 시민들의 질타를 받게 될꺼고.. 또.. "

 

식은땀까지 흘리며 어쩔줄 몰라하는 비서를 보며 염호는 돌겠다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를 느꼈다. 아내가 다쳤는데 바로 달려가진 못할망정, 일이라니 어쩜 이리 가혹할 수가 있는가.

 

" 지금 당장 차 대기시켜. 바로 가도록 하지. "

 

 

*

 

 

그게 마지막이었다. 자신이 지금 어떻게 병원에 와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그 중간과정이 깔끔하게 생략되어있었다. 비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나가 나이프를 상대하다가 다쳤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미리 잡혀있던 업무때문에, 염호는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먼저 향했다. 기자회견이고 뭐고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지만, 서장일을 하루 이틀 한게 아니었던 염호는 배태랑 답게 무사히 업무를 끝마칠 수 있었다. 물론 기억나진 않지만.

 

아무튼 이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그렇게 다나의 병실로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던 염호는, 저 멀리서 여유롭게 웃으며 나오는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 동창새끼 '

 

그쪽 역시 염호를 알아봤는지 천천히 염호에게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비열하게, 아니 그 누구보다도 사악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 뭐 곧 알게되겠지만, 미리 말씀드릴게요. 이게 예의인거 같아서. "

 

예의? 지금 예의라고 했나? 염호는 그의 입에서 나온 이질적인 단어에 모순됨을 느끼며 그를 처다보았다.

 

" 방금 청혼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아 물론 대답은 천천히 듣기로 했고요. 저 역시 재촉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

 

" … "

 

" 어서 들어가보지시 그래요? 여기서 이렇게 있어도 되는거에요?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면서 업무가 먼저라니… 무능력하네요. 한심해라. "

 

그리고는 웃으며 지나쳐 가는 동창새끼였다.

 

청혼? 청혼이라고? 염호는 매우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물론 자신 역시 물어볼 생각이었다. 모든 결정에있어서 제일 중요한건 그녀의 의사니까 하지만.. 이렇게 바로 청혼이라니 염호는 손을 들어 마른 세수를 하고는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 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눈에 보이는것은 이곳저곳 상처가 가득한 다나의 모습이었다. 그런 다나를 보며 염호는 마음한구석이 찢어지게 아파옴을 느꼈다. 동창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아니 맞는것이 확실했다.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다나가 이렇게 다쳐있었다. 염호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다나 역시 직전에 받은 청혼때문인지 얼굴에 혼란함이 가득했다. 그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황급히 숨긴 다나는 염호에게 어색하게 말을 건냈다.

 

" 왔어? 일은 잘끝났고? 피곤하지? 나는 괜찮.. "

 

" 청혼… 받을거야? "

 

" 어떻게.. 안거야..? "

 

다나의 동공이 커지며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그 붉은 눈에 염호의 모습을 담았다.

 

" 청혼.. 받을거냐고.. "

 

아 울면 안되는데. 염호는 어째서인지 눈가가 점점 뜨거워지는것을 느꼈다. 알아. 알고있다. 그 누구보다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자신이 있으니까.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것을 나는 잘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 네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이기심 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염호는 다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 작은 어깨를 껴안으며 말했다.

 

" 나는 정말 다나가 너무.. 좋아.. 그러니까 흡.. 그 청혼 안받으면… 안될까? 내가 더 잘할게.. 내가 더! 내가 더 잘할테니까.. 제발.. "

 

물기가 가득 어린 목소리에 다나는 한숨을 내쉬며 염호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는 염호를 살짝 밀어내어 그의 얼굴과 그녀의 얼굴이 마주 할 수 있도록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고는 염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순간이 끝나고 다나는 염호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 두 사람은 일생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를 아껴주며 사랑하겠습니까? "

 

갑작스러운 하지만 애정담긴 다나의 물음에 어벙벙해진 염호는 홀리듯이 대답했다.

 

" ..네.. "

 

" 내 대답도 마찬가지야. "

 

" 다나… "

 

" 우리 이미 결혼했잖아. 우리 이미 부부 아니야?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해 하는건데.. "

 

" 그치만.. 나는 다나가 더욱 행복해졌음 했어.. 아무리 재수없어도 그 다나의 동창이라는 사람 옆에서라면 다나는 평생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테니까.. "

 

다나는 뭐에 강하게 맞은듯 염호를 쳐다보았고, 염호는 그런 다나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어쩔줄 몰라했다.

 

" 나참.. 그래 뭐 몸이야 편하다 쳐. 근데 마음은 어쩔껀데. 좋아하지도 않는사람 옆에서 평생을 살라고? 나는 그런거 못해. 죽어도 니 옆에서 죽고. 살아도 니 옆에서 살아. "

 

" … "

 

" 나는 이미 네껀데 뺏길게 뭐가있다고.. 나 참내원.. "

 

다나는 어이없다는듯이 눈을 깜빡이고는 작게 미소지었다. 어째서인지 그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염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그러게 이미 원래부터 내꺼였는데, 뭘 걱정한걸까..? "

 

하지만 다나 좀 더 알아줬음 좋겠어. 네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말이야. 염호는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나의 빰을 가볍게 쓸더니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때론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사실을 망각할때가 있다. 단지 드러내지 않았을 뿐인데, 사람은 때론 보이는 것만을 믿고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있는 것에는 믿음을 갖지 못한다. 지금 염호의 상황 역시 그러 하였다.

 

사건을 설명하기에 앞서, 염호와 다나는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이다. 물론 같은 서장의 위치로서 한참 오래전부터 함께 얼굴을 마주한 사이이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동료일때와, 연인일때 그리고 부부일때는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그런점을 알고있기에 인연을 맺는 것이고, 다나와 염호 역시 서로의 곁을 지키며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기에 결혼을 했다. 물론 결혼을 한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는 커녕 매일 아침마다 행여나 꿈은 아니었을까 가슴을 쓸어내리는 염호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쉬도 때도 없이 밀려들어오는 업무들이었다.

 

도대체가 무슨 사건사고가 이리도 많은건지 아름다워 보이기만한 세상의 표면과는 다르게 시시각각으로 이곳저곳에서 사건이 터지고있었다. 물론 그 업무의 책임은 모두 염호와 다나의 몫이 되기 마련이었다. 하.. 어째서 사람들은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가.

 

" 이래뵈도 신혼이라고… "

 

도대체 누구한테 말을 하는건지, 염호의 한맺힌 한마디는 듣는이 없이 공기중으로 흩어졌다.

 

지금 시간은 오후 11시 다나의 얼굴을 못본지도 벌써 14시간째다. 내일 역시 마찬가지겠지.. 런닝머신 위를 뛰는것 마냥 반복되는 일상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염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그래 집에가면 다나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가뭄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의 꽃처럼 염호는 작은 기쁨을 생각하며 입가에 작게 미소를 그렸다. 그 기쁨도 잠시. 사건은 이곳에서 터져버렸다.

 

집 근처에 다다르자 어디선가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웃음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다나였다. 문제는… 다나의 옆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이 '남자' 라는 점이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눈가에 부드러운 곡선까지 그려가며 웃는 다나를 보며 염호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지는듯 했다.

 

' 아니야 설마 집앞에서 대놓고 바람을 피겠어? 다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혹시라도.. '

 

그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의심부터 자책까지 염호는 지금 자신이 보고있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려야할지 도무지 감조차 잡히지않았다.

 

' 그래. 여기서 혼자 생각한들 뭐가 달라지겠어. '

 

현명하다면 현명한것이고, 무모하다면 무모한것이 틀림없었지만 염호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 상황에 대한 해명을 듣고싶었던 염호는 떨리는 손을 주먹 쥐어 가린채 그 두 사람에게 걸어갔다.

 

염호를 가장 먼저 발견한것은 다름아닌 다나였다. 반나절만에 재회한 두사람이었다. 평상시라면 안부도 묻고 이것저것 제법 이야기를 나눌법도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염호에게는 그런 일상의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제일 먼저 입밖에 나온말은 인사도, 안부도 아닌 추궁의 말이었다.

 

" 누구야? "

 

사실 너의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진실이든 진실이 아니든 나는 그저 이 상황에 네가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 아- 내 동창이야. 인사해 여기는 내 남편이야. "

 

" 그러시구나- 이야기 자주 들었어요. 안녕하세요 처음뵙겠습니다. 다나 동창되는 사람입니다. "

 

" … "

 

도대체 무어라 입을 열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수가 있는거지? 염호는 저 낯짝에 당장이라도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것을 끝내 꾹꾹 누르며 침묵을 유지했다. 눈치가 있기는 있는건지 그런 염호의 상태를 눈치챈 다나의 동창은 비꼬듯이 이야기를 했다.

 

" 다나야 네 남편분 기분이 안좋으신거같은데 이만 들어가봐.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설마 이런 일로 기분 나쁘신건 아니겠지요? 그럼 이만- "

 

분명하다. 분명해. 분명 저 사람은 남 기분나쁘게 하는데에 있어서 도가텄음에 틀림없다. 사람속이란 속은 다 긁어 놓고 유유히 사라지는 저 뒷모습을 보고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 오늘은 좀 늦었네? 일이 많았던 모양이지? "

 

나긋나긋한 음성. 하루종일 보고싶던 얼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염호는 방금 전 자신이 겪은 일때문에 쉽사리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아니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다나의 반응을 보아서는 그 동창이라는 놈과 그렇고 그런사이가 아니라는것 쯤은 자신 역시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동창이라는 놈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분명 마음이 있는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염호는 자신이 본의 아니게 다나의 말을 무시하고있음을 깨달았다. 허둥지둥 입을 열려던 찰나에 이 긴 침묵을 꺤것은 다름 아닌 다나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아주 화가 나있는듯한..

 

" 야 "

 

" … "

 

" 너는 도대체가.. 하.. 아니다 "

 

 

*

 

 

모르고 지냈다면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일이겠지만, 이미 알아버린이상 어쩌겠는가. 염호는 자꾸 어젯밤일이 떠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문자 그대로의 아무것도. 염호는 이런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아내를 의심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고, 또 이런 상황을 만든 그 동창놈이라는 녀석은 더더욱이 싫었다. 염호는 한손을 눈가에 가져가 두눈을 지긋이 눌렀다.

 

" 후… "

 

이런 순간에 까지도 다나가 보고싶다니.. 이건 뭐 완전히 잡혀사는 거잖아? 물론 그것에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은 다나가 먼저 질투해주고 또 애정표현을 해줬음 하는 염호였다. 그러기에는 자신이 다나를 너무나도 좋아하는거 같지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염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적지는 단 한곳. 뻔하디 뻔한 곳이겠거니 생각하던 그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아내, 다나가 있는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그래. 어제일은 어쨌든 내 잘못도 크니까 다나에게는 솔직하게 미안하다고 해야겠지. 크게 두어번 쉼호흡을 한 염호는 다나가 있는 서장실의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잡고 문을 열었다.

 

" 다나 어제는 내가.. 어..? "

 

염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있는 모습은 다나 하나만이 아니었다. 두사람. 설마했지만 그러기에는 자신의 시력이 너무나도 정확했다. 뭐 호랑이니까. 아무튼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문제는 어째서 저 동창놈이 이곳에 있냐는것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것이 그쪽에서도 예상 밖의 일이었는지 동창쪽 역시 놀란듯 해보였다. 물론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은건지 바로 표정관리를 했다지만, 괜히 경찰청 서장님이겠는가 그런 사소한 변화를 놓칠리 없는 염호였다. 그래.. 당황했다 이거지? 그렇다는것은 공적으로 다나를 만나러 온것이 아닐터였다.

 

하 참나. 염호는 어이가 없다못해 기가막혔다. 어제와 같이 화가 날법도했지만, 너무나도 거지같은 지금상황에는 화를 낼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했다.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다나는 한숨을 쉬며 염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여긴 뭐하러 왔어? "

 

뭐하러 오긴 뭐하러오겠는가. 남편이 아내를 보러오겠다는데 원래 구실이 필요한건가? 하는 염호였다. 딱히 뭐라고 둘러댈 말도 없었기에 염호는 " 아니 그냥.. " 이라고 말을 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아니 나 이거 진짜 화내도 되는 상황 맞는거지? 염호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찰나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것은 다름아닌 귀능이었다. 얼마나 급한상황이면 노크도 없이 그냥 들어왔겠는가. 뭔가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챈 다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귀능이는 다나를 문쪽으로 인도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 서장님! 백모래가..! "

 

" 에이씨 "

 

귀능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나는 낮게 욕을 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물론 귀능역시 그런 다나의 뒤를 따라 문을 닫고 나갔다. 하하 오늘도 스푼은 바쁘네. 다나에게 뭔일이라도 안생겼음 좋겠는데...

 

물론 자신의 아내는 강하지만 그거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태평한 소리를 할때가 아니라는 자각이 들자 염호는 자신 역시 현장으로 출동하기 위해서 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건 핑계였고 사실은 이 재수없는 동창놈과 함께있자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저벅 저벅

 

염호가 문가에 다다르자 고요한 적막을 깬건 다름아닌 그 동창이라는 놈이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멜론기업 총 책임자를 맞고있는 사람입니다. 그때 소개했다싶히 다나의 동창생이죠. 그리고.. 당신은 경찰청 서장인 염호 서장 맞으시죠? "

 

능글맞게 웃는거 하고는. 염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멜론기업이라.. 엄청 큰 기업 아닌가? 아무렴 뭐 어쩌란건지… 염호는 천천히 뒤를 돌아 팔짱을 끼며 말했다.

 

" 잘 알고있네요. "

 

염호는 기분이 매우 나빴다. 한낱 인간 주제에..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개긴단 말인가. 자신이 사적인 자리에서 무슨짓을 당하든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아내 '다나' 한사람이 유일했다.

 

자기 입장은 알고 저런 말을 하는건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자 동창이 움찔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앗차 자신도 모르게 위협을 한 모양이었다. 크게 소란을 피울 생각이 없던 염호는 고개를 들어 계속 이야기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 저.. 저는 다나에게 무엇이든지 해줄 수 있습니다. 지위면 지위, 돈이면 돈. 그리고 저택의 안주인 소리를 들으며 평생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당신과는 다르게 말이죠. "

 

어째서인지 마지막 말에 강세가 들어있는듯 했다. 아무렴 상관없지. 내뱉고 있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적대감을 내비췄다.

 

" 그래서 뭐 지금 이혼이라도 해라? 그 소린가? "

 

" 그리고! 저는 당신 못지않게… 아니 당신보다도 훨씬 더 다나를 사랑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

 

" 그래? 그거 유감이네. 미안하지만 다른건 다 니 말이 옳을지도 몰라도 그건 아니야. 너같은 놈에게는 절대 안지지 안그래? 남의 여자나 빼앗으려고 하는 주제에 너무 당당하다는 생각은 안들고? "

 

염호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띄었다. 어느 한계의 분노를 넘어서자 찾아오는건 냉정함 뿐이었다. 눈앞에 있는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도 그 후에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할까 하며 빠르게 돌아가던 머리도. 모두 차게 식어 그저 저 입에서 어떤 개소리가 더 나올까? 하는 기대감 마저 들게 만들었다.

 

" 그러니 다나의 미래를 위해서도 다나를 포기해 주시죠. 좋은 아가씨라면 얼마든지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바쁘다며 자리를 떠버리는 동창이었다. 뭐? 소개를 해줘? 다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유일무이한 존재인지 안다면 그런 말은 절대로 나올 수 없었다. 그런 놈에게 다나를 빼앗기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

 

 

동창놈이 자리를 떠난 후에 염호역시 빠르게 본사로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본인은 서장이었으니까, 개인적인 업무로 - 그것도 자신이 아내를 만나러 간다는 팔불출 같은 이유로 - 자리를 오래 비울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서류작업을 한다고 해도 그게 눈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삼각관계인가? 그런건가?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해보였다.

 

본인 주장이지만, 모든것을 다 가졌다는 동창놈과는 다르게 자신이 가진것은 고작 경찰서장이라는 지위와 다나의 남편이라는 타이틀 뿐이었다. 그 타이틀 마저 위태위태 하다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다나를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나의 미래라니, 그를 위해선 자신 역시 고민을 해봐야할 필요가 있었다. 너무나도 좋아하니까. 네가 행복해지기를 누구보다 바라니까. 물론 결정은 다나의 몫이고 자신은 그 결정에 그저 따를 뿐이겠지만 말이다.

 

분명 아까 스푼에 있을때까지만 해도 절대로 그런놈에게 다나를 빼앗길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이런저런 생각 끝에 뺏길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나오자 한없이 우울해지는 염호였다.

 

그때였다.

 

쾅쾅쾅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염호는 깜짝놀라 문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자신의 비서가 매우 놀란 표정으로 염호에게 말헀다.

 

" 서.. 서장님! 아내분이..! "

 

" … 어디 병원이야. "

 

" 하지만.. 곧 공식 기자회견이 열립니다. 이번 자리에 불참한다면 상부는 물론 시민들의 질타를 받게 될꺼고.. 또.. "

 

식은땀까지 흘리며 어쩔줄 몰라하는 비서를 보며 염호는 돌겠다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를 느꼈다. 아내가 다쳤는데 바로 달려가진 못할망정, 일이라니 어쩜 이리 가혹할 수가 있는가.

 

" 지금 당장 차 대기시켜. 바로 가도록 하지. "

 

 

*

 

 

그게 마지막이었다. 자신이 지금 어떻게 병원에 와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그 중간과정이 깔끔하게 생략되어있었다. 비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나가 나이프를 상대하다가 다쳤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미리 잡혀있던 업무때문에, 염호는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먼저 향했다. 기자회견이고 뭐고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지만, 서장일을 하루 이틀 한게 아니었던 염호는 배태랑 답게 무사히 업무를 끝마칠 수 있었다. 물론 기억나진 않지만.

 

아무튼 이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그렇게 다나의 병실로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던 염호는, 저 멀리서 여유롭게 웃으며 나오는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 동창새끼 '

 

그쪽 역시 염호를 알아봤는지 천천히 염호에게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비열하게, 아니 그 누구보다도 사악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 뭐 곧 알게되겠지만, 미리 말씀드릴게요. 이게 예의인거 같아서. "

 

예의? 지금 예의라고 했나? 염호는 그의 입에서 나온 이질적인 단어에 모순됨을 느끼며 그를 처다보았다.

 

" 방금 청혼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아 물론 대답은 천천히 듣기로 했고요. 저 역시 재촉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

 

" … "

 

" 어서 들어가보지시 그래요? 여기서 이렇게 있어도 되는거에요?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다면서 업무가 먼저라니… 무능력하네요. 한심해라. "

 

그리고는 웃으며 지나쳐 가는 동창새끼였다.

 

청혼? 청혼이라고? 염호는 매우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물론 자신 역시 물어볼 생각이었다. 모든 결정에있어서 제일 중요한건 그녀의 의사니까 하지만.. 이렇게 바로 청혼이라니 염호는 손을 들어 마른 세수를 하고는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 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눈에 보이는것은 이곳저곳 상처가 가득한 다나의 모습이었다. 그런 다나를 보며 염호는 마음한구석이 찢어지게 아파옴을 느꼈다. 동창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아니 맞는것이 확실했다.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다나가 이렇게 다쳐있었다. 염호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다나 역시 직전에 받은 청혼때문인지 얼굴에 혼란함이 가득했다. 그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황급히 숨긴 다나는 염호에게 어색하게 말을 건냈다.

 

" 왔어? 일은 잘끝났고? 피곤하지? 나는 괜찮.. "

 

" 청혼… 받을거야? "

 

" 어떻게.. 안거야..? "

 

다나의 동공이 커지며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그 붉은 눈에 염호의 모습을 담았다.

 

" 청혼.. 받을거냐고.. "

 

아 울면 안되는데. 염호는 어째서인지 눈가가 점점 뜨거워지는것을 느꼈다. 알아. 알고있다. 그 누구보다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자신이 있으니까.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것을 나는 잘알고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 네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이기심 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염호는 다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 작은 어깨를 껴안으며 말했다.

 

" 나는 정말 다나가 너무.. 좋아.. 그러니까 흡.. 그 청혼 안받으면… 안될까? 내가 더 잘할게.. 내가 더! 내가 더 잘할테니까.. 제발.. "

 

물기가 가득 어린 목소리에 다나는 한숨을 내쉬며 염호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는 염호를 살짝 밀어내어 그의 얼굴과 그녀의 얼굴이 마주 할 수 있도록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고는 염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순간이 끝나고 다나는 염호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 두 사람은 일생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를 아껴주며 사랑하겠습니까? "

 

갑작스러운 하지만 애정담긴 다나의 물음에 어벙벙해진 염호는 홀리듯이 대답했다.

 

" ..네.. "

 

" 내 대답도 마찬가지야. "

 

" 다나… "

 

" 우리 이미 결혼했잖아. 우리 이미 부부 아니야?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해 하는건데.. "

 

" 그치만.. 나는 다나가 더욱 행복해졌음 했어.. 아무리 재수없어도 그 다나의 동창이라는 사람 옆에서라면 다나는 평생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테니까.. "

 

다나는 뭐에 강하게 맞은듯 염호를 쳐다보았고, 염호는 그런 다나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어쩔줄 몰라했다.

 

" 나참.. 그래 뭐 몸이야 편하다 쳐. 근데 마음은 어쩔껀데. 좋아하지도 않는사람 옆에서 평생을 살라고? 나는 그런거 못해. 죽어도 니 옆에서 죽고. 살아도 니 옆에서 살아. "

 

" … "

 

" 나는 이미 네껀데 뺏길게 뭐가있다고.. 나 참내원.. "

 

다나는 어이없다는듯이 눈을 깜빡이고는 작게 미소지었다. 어째서인지 그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염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그러게 이미 원래부터 내꺼였는데, 뭘 걱정한걸까..? "

 

하지만 다나 좀 더 알아줬음 좋겠어. 네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말이야. 염호는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나의 빰을 가볍게 쓸더니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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