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호다나] 갈증
written by 슈가펌킨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원하면 원할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짙어지는 갈증. 단순한 목마름이 아닌 어딘가 깊숙한 곳에서부터 비롯되는 그런 갈증말이다. 사막 한가운데에 서있더라도 이보단 덜하리라. 일호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이 이야기는 그들이 연인이 되기 훨씬 이전, 일호가 스푼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던 때로 돌아가 시작한다.
" 서장님은요? "
" 아까 나가셨어요. 그런데 일호형 요즘 서장님이랑 무슨일이라도 있으세요? 부쩍 찾는 일이 늘어난거같아서요. "
필터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직설화법에 일호는 정곡을 찔린듯했다.
" 그.. 그냥요. 아니 그냥이라기 보다는 내무반과 관련해서 건의하고싶은 사항도 있고 해서.. "
거짓말은 아니었다. 물론 이야기를 하기 위한 표면상 이유에 불구하지만. 뭐 아무렴 어때. 어째서인가 얼버무리는 듯한 일호의 대답에 나가는 잠시 일호를 쳐다보고는 별 신경을 두지 않았다. 하하 이런 만사가 귀찮은 꼬맹이 같은이라고.
이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아주아주아주 이례적이고 특별하며 또 말도안되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자신은 먹을만큼 나이를 먹었고, 이런저런 일도 많이 겪었으며, 이제는 거의 탈속(?)에 가까운 삶을 살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많은것을 경험한만큼 더 이상 원하는것도 없었고, 이제 자신이 신경을 두는곳은 오직 곁에있는 가족들과 푸릇푸릇한 식물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 어째서인지 자꾸만 한 사람에게 자꾸 시선이 쏠렸다. 아니. 시선만이면 감사했겠지만, 세상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빼앗겨 버린것은 시선뿐만이 아니었다. 시선은 물론이요 정신까지 쏠려버리니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이 자신은 아주 오랜세월을 살아왔고, 이제 막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도 아니었으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일말의 혼란도 겪지않았다. 좋아하는거지 뭐. 별다른 변명이 있겠는가.
자꾸만 닿고싶다. 한번이라도 더 그 시선을 받고, 너의 목소리를 듣고싶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 이토록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
" 아까 나 찾았다며. "
" 아. 맞아요… 다나씨? "
그토록 원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일호는 그 어느때보다도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랬는데.. 일호가 고개를 들자마자 눈에 들어온것은 다나의 온몸 곳곳에 피어있는 붉은 꽃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듯한 느낌을 받으며 일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 아. 별로 놀랄건 없는데, 그냥 좀 긁힌거야. 나 찾았다길래 겸사겸사 들렀지. "
" 하.. 제가 몇번이나 말을 해야 조심할래요?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사람 속도 모르고.. 다나씨는 항상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 기관의 보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부주의해도 되는거에요? 그리고.. "
나는 당신의 피 한방울이라도 아까운데. 라는 말을 삼키며 일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 그리고? "
" 아 아니에요. 아무튼 정말 다음에 또 이러고 오면 화낼꺼니까. "
" 이미 내고있으면서. "
" 다나씨! "
어쩜 사람이 한마디도 그냥 넘어가는게 없단말인가. 일호는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다나의 상태를 살폈다.
" 그렇게 멀뚱하니 서있지만 말고 이리로 와서 앉아봐요. 치료해야지 설마 그냥 냅두려고요? "
" 그래. "
일호의 잔소리 섞인 말이 끝나자 다나는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일호의 곁으로 와 앉았다. 그리고는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 둘 푸르기 시작했다. 다나의 입장에서야 아무렇지 않겠다지만, 일호의 입장에선 전혀 그러지 못했다. 세상에- 지금 뭐하는 짓이람? 일호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런 다나의 모습을 보며 마치 조각상 마냥 얼어붙었다. 일호의 시선을 느낀건지 다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일호에게 말을 걸었다.
" 뭐해? 사람 옷 벗는거 처음봐? "
" 아니 지금 그게 할소리에요? 사람 옷 벗는거 처음보냐고요? 당연히 아니죠. 근데 세상에나 다나씨가 벗는건 처음보거든요? 지… 지금 뭐하는거에요? "
" 뭐하긴 옷벗잖아. "
" 아.. 아니..! "
" 치료해준다며. 옷입은채론 할 수 없잖아. "
" 그건 그런데.. "
" 뭐야 도대체. 오늘 어디 아프냐? 상태가 왜이리 메롱해? "
라고 말하고 다나는 일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뒤를 돌았다. 새하얀 살결과 부드러운 곡선. 아무리 특기가 금강불괴이고 무서운 서장님이라지만 다나의 몸매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아름다웠다.
또 다시 갈증이 온몸을 휘감는다. 좀 더 너를 갖고싶어.
일호는 무언가에 잔뜩 홀린듯 지긋이 눈을 감으며 붉은 꽃잎이 가득한 다나의 등에 입을 맞추었다. 가뭄에 내리는 비. 사막의 오아시스. 입술이 닿자마자 전신을 휘감던 갈증이 마치 하룻밤의 꿈이라도 되는듯 사라졌다.
" … 지금 뭐하는거지? 혹시 죽고싶다고? "
" 저는 지금 여행자에요. 사막에 있는. 그리고 방금 오아시스를 찾았죠. 그러니 제가 쉴 수 있도록 잠시만, 아주 잠시만 모른척해주세요. "
" … 뭔 개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겠군. "
" … "
갈증이 아닌 중독. 중독이 아닌 갈증. 그 어떤 형태이든 벗어나기에는 이미 너무나도 깊어져버린 감정. 한순간 쾌락을 주곤 다시 목타게 만드는 아름다운 당신. 난 당신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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