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않아. 삐 소리이후.. ]
" 젠장. 뭐하길래 전화도 안 받는거야.. "
일호 자신도 잘 알고있었다. 휴대폰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것을. 하지만 이것만 해도 벌써 몇통째인지, 아무리 전화를 걸어보아도 수신음만 들릴뿐, 정작 전화를 받아야할 장본인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물론 평상시라면 일때문에 바쁘겠지싶어 전화를 받지 않더라도 신경쓰지않았겠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
[일호다나] 감기
written by 슈가펌킨
때는 대략 30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다나와 연인관계인 일호가 스푼을 찾아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저녁 준비를 하기위해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던 일호는 조금 시간이 남아 스푼에 들르기로했다.
오늘따라 스푼의 분위기가 평화로운걸보니 딱히 바쁜것 같아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서장실에는 당연히 자신의 연인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일호는 텅빈 다나의 의자를 보고 의아해했다. 귀능씨라면 무슨일인지 알고있겠지. 일호는 다나를 대신하여 서류더미에 쌓여있는 그녀의 비서 귀능이에게 물었다.
" 어라? 서장님은요? 혹시 아직 임무중? "
" 아 서장님이라면 오늘 감기때문에 결근하셨어요. "
감기? 일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 자신이 아는 다나는 금강불괴라는 특기가 있었기때문에 어떠한 위험으로부터 안전했다. 그것이 설령 바이러스라 해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다나가 감기라니.. 특기가 사라지지않는이상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네? 하지만.. '
" 아.. 그게 사실.. 아으 서장님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하셨는데.. "
" 어서 말해봐요! "
사귀는 사이에 숨길게 뭐람. 더 이상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던 일호는 머뭇거리는 귀능에게 빨리 말하라며 재촉하였다. 혹시 누군가가 습격이라도 한건가? 일시적이지만 특기가 사라지는 약이라면 들은적이있었다. 만약 그런거에 당한거라면.. 감기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부상을 입었을것이다. 이곳까지 생각이 닿자 일호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 아니 어제 서장님이 강가로 임무를 나가셨는데, 거기서 범죄자가 어찌나 말을 잘하던지.. 서장님이 화가나신거에요.. 그래서 특기가 없는 상태로 물에 들어가 싸우시다가 그만.. "
' 아니 이 여자를 그냥..! '
고작 그런 이유로 감기에 걸리다니. 일호는 속이 터지는듯했다. 화가나면 싸우지말라고 그렇게 목청이 터져라 주의를 줬건만 아직도 자신의 잔소리가 부족한모양이었다. 일호는 여태까지 걱정했던 자신이 바보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런 말이 없던 다나에게 화가났다.
물론 잘 알고있었다. 자신이 아는 다나 라는 여자는 아프다고하더라도 절대 티를 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강하고 멋진 여자. 그런면에 반한게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이런때만큼은 좀 더 어리광을 부리며 자신에게 의지를 해주었으면했다.
' 아무리 괘씸하다지만.. 그래도 가서 간호라도 해야겠지? '
일호는 자신의 동생 이호에게 전화를걸어 자신은 집에 좀 늦게 갈꺼같으니 저녁을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을했다. 이호로부터 알겠다는 응답을 받은 일호는 곧바로 다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혹시라도 자는건가? 몇번을 걸어도 전화를 받지않자 결국 일호는 집으로 곧장 찾아갔다. 그렇게해서 도착한곳은 바로 다나가 살고있는 아파트였다. 다나는 이미 독립을 한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갑자기 가족이 찾아오는 등의 일은 거의 없었다. 또한 주위사람들도 일하냐고 바쁜건지 자주 만날일도 없었다. 때문에 전혀 찔릴게 없는 일호였지만 어째서인지 문 바로 앞에 서있으면서도 초인종을 누르기가 힘들었다.
' 정신차려 일호. 이상한짓하는게 아니잖아. 좀 더 당당해져! '
괜시리 수상한 사람이 된것 같은 기분을 느낀 일호는 이순간에도 아파하고있을 다나를 생각하며 정신을 차렸다.
띵동-
" 다나씨 안에 있어요? "
혹시 못들은건가? 초인종을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지않는 인기척에 일호는 다시한번 초인종을 누르려고했다. 그때였다. 굳게 닫혀 영원히 열리지 않을것같았던 문이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열리기 시작했다.
일호는 그런 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문틈에 손을 넣고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손잡이를 잡고있던 다나가 앞쪽으로 당겨지는 힘에 균형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일호는 그런 다나의 허리를 재빨리 감싸 잡아주었다.
어쩌다 보니 다나를 자신의 품에 안게된 일호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얼굴이 빨개졌다. 잠시후 조금 진정이 된 일호는 빠르게 다나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불규칙한 호흡에 잔뜩 오른듯한 열까지. 생각보다 다나의 상태는 심각한듯했다. 게다가 이 몸상태로 반바지라니.. 일호는 납득이 안된다는듯이 고개를 흔든 뒤 말했다.
" 다나씨 괜찮아요? "
" 일호.. 여긴 무슨일로.. "
" 지금 그게 중요해요? 그러게 내가..! "
" 시끄러. 머리울리니까 조용히해. "
" 알겠어요. 대신에 나중에 10배로 할꺼니까 각오하고 있어요! "
다나를 먼저 눕혀야겠다고 생각한 일호는 들고있던 짐을 내려놓고는 다나를 조심스레 안아들었다. 평상시라면 이미 두,세대 정도는 맞았겠지만 때릴 기력도 없는건지 다나는 일호에게 기대어 가만히 안겨있었다. 어째서인지 그런 다나를 보고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아파오는듯했다. 다나를 침대에 눕힌 일호는 미지근한 물수건을 다나의 이마에 올려놓은 뒤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먹었겠구만. '
일호는 무슨죽을 만들어야할지 고민을하며 내려놓은 짐을 찾으러갔다. 운 좋게도 장을보고 돌아오는 길이었기 때문에 저녁을 만들 재료는 충분했다. 다나가 걱정됬던 일호는 잠들어있는 다나의 상태를 다시한번 확인하고는 저녁준비를 하기시작했다.
*
다나는 어디선가 솔솔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천천히 눈을떴다. 누가 온건가? 다나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나가려했다. 분명 그러려했는데.. 어째서인지 몸이 물먹은 솜마냥 무거워 움직일 수가 없었다.
' 어지럽다. '
누워있음에도 불구하고 롤러코스터를 100번이라도 탄 마냥 세상이 빙빙도는듯한 기분을 느낀 다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느새 잠이라도 든것일까,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무언가가 자신의 볼에 닿은듯한 기분이 들자 다나는 닫힌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려 행동의 주체를 확인했다. 분명 가족 중 누군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것은 새하얀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였다.
" … 일호? "
" 무슨 안좋은 꿈이라도 꾼거에요? 왜이리 식은땀을.. "
" 너가 왜 여기있어? "
" ...지금 그걸 말이라고해요? 왜 여기 있냐고요? 그걸 몰라서 물어요? "
걱정스럽게 다나를 쳐다보던 일호는 다나의 말에 열이라도 받았는지 손에 들고있던 물수건을 내려놓고는 따지듯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 어쩜 사람이 그럴수가있어요? 내가 다나씨 아픈걸 다른사람한테 전해들어야겠어요? 아니 그건 그렇다고 쳐요. 근데 내가 평상시에 누누이 이야기했었죠. 화내지말라고, 그리고 화가나면 절대 싸우지말라고. 그게 그렇게 어려운 약속이에요? 다나씨도 특기가 없으면 그냥 평범한 여자잖아요. 그런데 왜 자기 몸을 그렇게 나몰라라해요? "
마치 한여름에 퍼붓는 소나기처럼 끊임없이 쏟아지는 일호의 잔소리에 다나는 경이롭다는 표정을지었다. 사람이 저렇게 이야기할수도 있구나. 사실 따지고보면 일호의 말중에서 틀린말은 하나도 없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자신 역시 기분나빠할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워낙 잘 아프지도 않은 몸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이야기하는게 익숙하지않았다. 화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를 통제하는 일은 이미 자신의 능력 한참 밖의 일이었다. 오죽하면 분노 교정도 실패했겠는가.. 뭐 아무튼 이건 이쪽사정이고, 누가 보아도 지금상황에선 자신이 잘못했음에 틀림없었다.
" .. 미안. 내가 잘못했다. "
" … "
다나가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수긍하고 사과를 하자, 일호의 화가 조금 누그러진듯했다. 후우-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새하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크게 숨을 내쉰 일호는, 이내 침대위에 앉더니 고개를 들어 다나와 눈높이를 마추고는 이야기했다.
" 걱정되서 그래요. 연락이 안되는것도, 다나씨가 아픈것도. 이렇게 아픈 모습을 보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게 너무 미안하고, 또 안쓰러워서 그랬어요. "
어느새 다나의 손을 잡고있던 일호는 한쪽 손을 들어 다나의 볼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혼자 말도 못하고 얼마나 아팠을까. 하루종일 끙끙대고있었다고 생각하니 일호는 더욱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러고는 살짝 눈을 감으며 다나의 입술위에 입을 맞추었다.
일호의 갑작스런 키스에 놀란 다나는 힘을 주어 벗어나려했지만, 그것도 잠시 더욱 자신을 강하지만 부드럽게 감싸안는 일호에 의해 저지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입맞춤 끝에 드디어 제로였던 둘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다.
" 너.. "
" 걱정마요. 나야말로 감기랑은 담쌓은 사람이니까요. "
" 후.. 의사집안이라면서 환자는 안중에도 없나보지? "
" 정말이지.. 비꼬지 말아요. 걱정시킨 벌이에요. 그리고 다나씨 아까부터 신경쓰인건데, 감기걸렸다는 사람이 막 반바지입고있고…! "
" 이미 벌은 다 받은거같은데, 조용히하지? "
" 그럼 지금이라도 갈아입어요. 빨리! "
" 뭐 어때, 니 앞인데. "
" 그래서 더 문제라는거잖아요! "
" 아픈 환자를 덮치기라도 하겠다는거야? 하긴 벌써 입술도 빼앗았겠다 이제 뭔들못하겠어.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 변태구만. "
" 다나씨! "
대놓고 일호를 놀리는 다나의 발언에, 일호는 얼굴이 귀까지 빨개졌다. 어디가 그렇게 웃긴건지 다나는 일호의 얼굴을 보고는 눈물까지흘리며 웃었다. 범죄까지 앞으로 한발자국! 계속되는 다나의 놀림에 인내심의 한계에 맞닿은 일호는 결국 참다못해 다나의 손목을 잡고는 그대로 눕혔다.
" 내가 못할줄알아요? 사람 그렇게 놀리는거 아니에요! 내가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참는데도 한계가있다구요! "
꽤나 진지하게 대응하는 일호의 모습에 다나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웃으며 일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 그래? 그거 아쉽게됬네. 이건 내가 주는 벌이야. "
" 정말이지.. "
일호는 그런 다나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는지 다나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했다.
" 밥 아직 못먹었죠? 준비했으니까 얼른 오세요. 그전에 긴바지로 갈아입고요. 감기는 내가 어떻게 치료도 못해주는데, 더 심해지는 꼴은 보고싶지 않거든요? "
" 네에 네에- 그니까 얼른 나가주시죠. 아니면 보는 앞에서 갈아입을까요? "
능글능글. 조금전까지 다 죽어가던 사람은 어디가고 왠 능구렁이 하나가 자신의 앞에 서있는듯했다. 일호는 결국 또 다시 투덜거리며 내쫒기듯 방을 나왔다.
*
" 자 어서 아- 해봐요. "
" 거절. "
어디서 본건지 일호는 여느 커플들처럼 다나에게 직접 죽을 먹여주려고했다. 물론 순순히 먹어줄 다나가 아니었지만서도.. 오히려 다나는 먹어주기는 커녕 마치 범죄자라도 보는듯한 표정으로 일호를 응시했다.
" 아무리 다나씨라도 그런 표정은 좀 상처인데요? "
마치 주인에게 내쳐진 강아지마냥 슬퍼하는 일호를 보며, 다나는 자신이 강아지랑 연애를 하는건지 아니면 사람이랑 연애를하는건지 잠깐 고민했다.
' 뭐 못해줄것도 없지. '
이거 원 어리광 부리는것만 보면 누가 환자인지도 모르겠구만. 그래도 나름 연인이라고 자신을 간호해주러 온 일호가 기특했는지, 다나는 이번 한번 만큼은 받아주기로 마음먹었다. 다나는 진심으로 상처를 받은듯 땅바닥을 쳐다보며 중얼거리고있는 일호의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게했다.
" 아- "
" 지금 밀당하는거에요? 난 이미 밀릴데로 밀려서 더 이상 갈곳도 없다구요. 여기 뒤는 완전 낭떨어지구만. 너무해 "
일호의 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다나는 일호를 쳐다보며 계속 입을 벌렸다.
" 아- "
결국 일호는 자신이 마냥 대인배라도 된다는듯이 졌다는 표정을 짓고는 죽을 먹여주었다.
" 맛있네. "
그럼 그렇지. 다나가 칭찬을 해주자 일호는 금세 근엄한 표정을 풀고는 금방이라도 날아갈것만 같은 표정을 지으며 방긋방긋 웃었다.
" 다나씨가 아픈건 죽도록 싫지만, 가끔 이렇게 있는것도 나쁘지않네요. "
" 아프란거야 말란거야. "
" 당연히..! 음.. "
다나는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을 하는 일호를 보며 작게 웃었다. 다나 역시 아플때 누군가가 옆에서 돌봐준다는 사실이 나쁘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런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았던건지 다나는 새침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 다음에는 제일먼저 불러서 부려먹을테니까. "
역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일호는 그런 다나의 생각이 훤히 읽힌다는듯이 눈에 아름다운 반달을 그리며 이야기했다.
" 당연하죠.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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