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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이런 영웅은 싫어

[2p일호다나] 이유모를 짜증

엉겁결의 시간을 살아왔다. 물론 평온하고 순탄한 인생이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것이다. 많은 인간에게 정을 줬고, 사랑을 느꼈으며 덕분에 원하진 않았지만 이별이라는 아픈 감정도 겪어보았다.

 

하지만 싫지않은 누군가에게 짜증을 느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혹여나 너무 오랜시간을 살아 잊어버린것은 아닐까도 했었지만, 역시 이런 감정은 처음임에 틀림없었다. 도대체… 무슨 감정일까…

 

 

 

[2p일호다나] 이유모를 짜증

written by 슈가펌킨

 

 

 

히어로의 삶이란 언제나 위험으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그들이 다쳤을 때 그들을 치료해주는 힐러는 몇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부족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있기에 일호는 언젠가부터 자청해서 스푼을 도와주고있었다.

 

표면상의 이유는 ' 정의실현 그리고 인력난해소 ' 였지만, 우리의 일호는 사실 그런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어짜피 결국 흙으로 돌아갈 존재들이었기에, 수백년 수천년을 살아온 일호에게 그들의 목숨이란 개미의 눈물 만큼의 흥미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스푼을 도와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단 하나. 스푼의 서장 다나 때문이었다.

 

언제나 헤실헤실 미소로 가득한 얼굴은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듯 해보였다. 한 기관의 서장, 그것도 시민을 지키는 기관의 서장이라는 사람이 저렇게 정신나간 모습이라니 일호는 기가막히고 또 코가막힐 노릇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 마저도 아무런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양)아들인 오수를 따라 자주 만나러 가다보니 언젠가부터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물론 계기가 그리 간단한것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그가 그녀를 만나러 갈 때마다 높은 빈도로 그녀는 부상을 당해있었다.

 

와 서장이라고 더럽게 막굴리네

 

그가 다나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물론 덧붙여서 ' 히어로는 할게 못되는구만 ' 이라는 뜻밖의 교훈을 얻기도 했지만, 어쨌든간에 정말 별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한번 두번 … 그리고 손가락으로 더 이상 셀 수 없을쯤이 되자 일호는 어째서인지 화가나기 시작했다. 더욱 화가나는 점은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쩜 사람이 저렇지?

 

다쳐도 눈깜빡 하나 하지 않는다. 괜찮냐고 한마디 건네 보았지만 되돌아 오는것은 괜찮다 라는 대답과 한없이 밝은 미소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눈물이 없는것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을 제외한 주위의 인물들이 상처입을 때마다 그녀는 자주 눈물을 보였다.

 

아 짜증나

 

하지만 왜? 일호는 문득 드는 자신의 감정에 의아해졌다. 어째서 짜증이 나는거지? 왜? 정답이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던 일호는 하염없이 울고있는 다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 앞으로 스푼의 힐러는 접니다. "

 

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내뱉는 것이었다.

 

 

*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 일호의 발언은 매우 싸가지가 없게 느껴졌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세상 누구에도 비할 수 없는 최고의 힐러였다. 물론 그의 동족들은 모두 동일한 특기를 가지고있으니 비교대상에서 애초에 제외되었지만, 어쨌든 그를 능가할 어디에도 없었다.

 

때문에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 귀중하고 소중하며 엄청난 일호님 제발 저희의 힐러가 되주시옵사 ' 하고 싹싹 빌어도 모자를 판에 그가 직접 자청하여 스푼의 힐러가 되준다니 스푼의 입장에서 그를 거부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 일호가 도와준다니 정말 기뻐! "

 

두팔을 활짝 피고 그를 향해 웃는 그녀의 모습은 한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저도 모르게 짜증나던 마음이 누그러짐을 느낀 일호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별말씀을 하고 웃어보였다. 이런 일호와 다나를 제외한 주위의 사람들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안그래도 싸가지없고 재수없으며 심지어 무섭기까지한 그 일호가 스스로 힐러가 되겠다고 말하다니 이는 전례없는 일이었다. 물론 특기자답게 남을 돕는데 있어선 별다른 불평이없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 뿐이었다. 왜인지 물어봤자 좋을게 없겠지 라고 판단한 이들은 결국 찝찝한 마음으로 일호를 바라보았다.

 

 

*

 

 

" 서장님 지원 요청입니다. "

 

" 아. 응 알았어 지금 당장 갈게. "

 

" 또 말입니까? "

 

" 응 그렇게 됬네, 헤헤 "

 

오늘만 벌써 3번째, 그녀가 지원요청을 비롯하여 출동을 한지도 벌써 3번째였다. 그녀 역시 일호와 마찬가지로 특기자였다. 그녀의 특기는 ' 금강불괴 '. 어떤 총과 칼도 그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주 다치기 마련이었는데, 그 이유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였다.

 

그녀를 걱정한 주위사람들은 그녀에게 서장이라는 직책도 맡고있으면서 그렇게 쉽게 휘둘리면 어쩌냐고 자주 핀잔을 주곤했지만, 이것이 그녀의 천성인것을 어찌 하겠는가. 그녀는 그럴때마다 하얀 머리칼을 만지며 괜찮아, 괜찮아! 하고 웃어 넘겼다. 그런 그녀를 보며 일호는 또 다시 짜증을 느꼈다.

 

" 이번에는 제발 좀 조심해줬음 좋겠습니다. "

 

" … "

 

" 아무리 유능한 힐러를 두었다지만, 이건 학대죠 학대. "

 

" 응! 알겠어! 다녀올게! "

 

그는 오늘도 하염없이 해맑은 그녀를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머리위로 손을 얹어 가볍게 쓰다듬는것이었다. 뭐랄까 어미 고양이가 애기 고양이를 보고 그래그래 알았다 하는 느낌. 일호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진 다나는 일호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곤 서장실 밖을 나섰다.

 

" 형. 서장 좋아해? "

 

서장실에는 일호와 다나 뿐만 아니라 그의 동생 이호도 같이 있었는데, 이호는 일호와 다나의 모습을 빤히 관찰하더니 입을 열었다. 다름아닌 돌직구. 누가 일호 동생 아니랄까봐 그는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일호에게 물었다.

 

" … 짜증나 "

 

어짜피 숨길생각도 없었고, 굳이 숨겨야할 이유도 없었다. 일호는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이호에게 나지막히 내뱉었다.

 

" 뭐가? 설마 나? "

 

" 슬프다. 내 동생이 이렇게 머저리라니 "

 

" 아니 알아듣게 설명해야지, 상처다 그거? "

 

" 그냥. 다나를 볼때마다 자꾸 짜증이나 "

 

" 왜? "

 

그러게 왜일까. 그는 끊임없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했다. 왜 짜증이 나는걸까.

 

 

*

 

 

그녀는 자주 다쳐오곤 했다. 또 어찌나 덜렁거리는지 하루에도 수십번 무언가를 떨구질않나 깨먹질않나 하여튼 단 1초라도 눈을 때기가 힘들었다. 물론 그냥 눈길이 가는 것도 있었지만, 아무튼 그녀는 언제나 위태로워서 항상 일호의 관심을 끌곤했다. 그녀가 다칠때마다 그는 자신 역시 어딘가 아픈듯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속상함. 그리고 짜증이었다. 물론 맥락상 왜 짜증이 나는지 알거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짓기에는 뭔가 꺼리낌했다. 다나를 좋아하는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오랜시간을 살았기에 이런 감정에 어리숙하지도 않았고 또한 부정할 이유가없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었으며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호와 한참 대화를 나누다보니 다나가 지원을 간지도 벌써 2-3시간이 지났다. 이젠 슬슬 돌아올시간이네 라고 생각하며 다나를 기다리던 일호는 문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얼핏 들리던 서장님! 하고 외치던 귀능의 목소리가 일호의 신경을 곧추세웠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문을 거칠게 연 일호는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다나의 모습에 누군가 자신의 가슴속에 불을 지피는듯한 감정을 느꼈다.

 

선홍색 피로 가득 물든 그녀의 새하얀 머리칼은 그마저도 어딘가 어울리는듯 했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녀가 큰 부상을 당했음을 의미했다. 이런 순간에 까지도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않는 다나의 모습에 일호는 가슴이 미어지는듯 했다.

 

서장의 위치에 있었기에 그녀는 스푼의 기둥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물론 그런점을 감안했을 때 그녀가 그녀의 사원들에게 강하고 올곧은 면모를 보여야 하는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때론 지치고 상처받는 인간이었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일호였기에 일호는 덧없는 속상함을 느꼈다.

 

분노로 인해 떨리는 손을 주먹진 뒤 그는 다나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러고는 다나를 가볍게 안아들어 서장실로 향했다.

 

" 헤헤… 미안 약속 지킬라그랬는데… 다쳐버렸어… "

 

" 닥치세요. "

 

그녀를 조심스럽게 쇼파에 눕힌 일호는 빠르게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짜증난다. 이제까지 느낀 짜증중에 최고였다. 지금에라도 당장 다나를 이렇게 만든 개새끼들을 찾아 전부 죽여버리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새하얗고 예쁜 얼굴을 이렇게 상처투성이로 만든것도, 하얀 머리칼을 피로 물들인것도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점이 없었다.

 

그래 아무래도 이 감정은…

 

너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결론 아닌 결론을 낸 일호는 치료를 마친 뒤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기분이 좋은지 여느때와같이 뺨을 붉히며 헤헤 웃던 다나는 이내 피곤했는지 느리게 눈을 꿈뻑거렸다.

 

일호는 자신이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다나에게 덮어준 뒤 다시 다나의 앞으로가 그녀와 눈높이를 마주했다.

 

" 걱정 좀 끼치지 마세요. "

 

" ...응… "

 

어짜피 그래봤자 또 다쳐오겠지만. 일호는 뒷말을 삼킨채 천천히 느긋하게 다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좀 자둬요. "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다나가 완전한 잠에 빠지자 일호는 행여나 다나가 깰까봐 다나로부터 손을 거두었다. 그러곤 찬찬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긴 속눈썹 부터 예쁜 입술까지. 하… 정말이지 단단히 빠졌나보다. 일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조심히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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