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예나] 감기
written by 슈가펌킨
" 예나야. 강예나! "
여름이라기엔 너무나도 시원한 바람, 하지만 가을이라고 하기엔 아직 햇볕이 쨍쨍한 그런 날씨. 어느덧 늦여름을 지나 초가을로 접어들고 있는 와중에, 서원사의 아침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던 서원사는 오늘도 여전히 분주했는데, 단 한가지 다른점이 있다면, 어째서인지 등교준비를 하고있는 사람이 단 한명 이라는 점이었다.
" 강예나. 너 학교 안갈꺼야? "
1분 1초가 급한 와중에, 집안 어디에서도 모습은 커녕 목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예나가 답답했던 우주는, 노크따위는 쿨하게 생략한채 예나의 방문을 열어 재꼈다.
" 강.. 예나? "
문을 열자 우주의 눈에 들어온것은 이제 막 잠에서 깬듯한 예나도, 허둥지둥 서두르며 학교갈 준비를 하는 예나도 아니었다. 그 대신 방에 자리한건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불뭉치였다. 예상 밖의 모습에 당황한 우주는 잠시동안 자리에 얼어붙어있다가, 이내 예나를 깨우기 위해 방안으로 들어가 이불을 들췄다.
" 너 진짜. 이제 그냥 지각하겠다 이거지? "
비록 말투는 거칠었지만, 가능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예나의 어깨를 잡아 깨우던 우주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고르지 못한 숨소리, 상기된 볼 , 그리고 맺혀있는 땀까지. 이제까지 마냥 자고있던 사람이라기엔 예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마치 어딘가 아픈 사람처럼… 빠르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우주는 어젯밤 모두 함께 마루에 앉아있었던것이 기억났다. 아무리 여름이 다 지나지 않았다지만,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의 밤은 쌀쌀하다면 쌀쌀한 날씨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는 얇은 여름잠옷 하나만 입고있었다. 물론 그런 예나가 걱정됬던 우주는 예나에게 겉옷을 가져다 줄까도 했었지만, 어쩌겠는가 본인이 괜찮으시다는데.
' 젠장 역시 그때 억지로라도 옷을 입혔어야 했는데.. '
우주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예나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비록 체온계로 정확하게 잰건은 아니었지만, 워낙 펄펄 끓는 이마에 우주는 예나의 체온이 높다는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 아.. 우주… 민우주? "
잠결에 누군가 자신을 만지는, 심지어 차갑기 까지한 느낌에 예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 괜찮아? 아 일어나진 말고. "
" 으응. 콜록 괜찮아 괜찮아. "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예나를 말리던 우주는 결국 한숨을 쉬며 예나의 어깨를 감싸안은 뒤 예나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현기증에 중심을 잃은 예나의 모습에 우주는 다급히 예나를 잡았다. 우주는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며 기침을 하는 예나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어느정도 진정이 된 모양인지,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다름아닌 예나였다.
" 콜록 그보다 학교 지각하겠다. 우주야 너 먼저가. 이러다 같이 늦겠어. "
" 지금 가봤자 이미 늦었거든. 그리고 강예나 너, 이런 몸상태로 학교는 무슨 가긴 어딜가 "
" 그치만.. 오늘부터 우리반 연극 연습있잖아. "
" 안됀다면 안돼. 너 이상태로 학교 절대 못보내. 그러니까 집에서 루다랑 바바랑.. "
바바? 그러고보니 어제 루다랑 바바랑 어디 간다고 했던것 같은데. 우주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예나와 함께 학교를 가자니, 예나의 몸상태가 더 나빠질거 같고,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빈 집에 아픈 예나 혼자 남겨둘순 없는 노릇이었다. 우주 자신 또한 무단으로 학교를 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우주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 우주야… 응? 민우주.. "
우주는 자꾸만 보채오는 예나의 모습에 머리가 아파오는듯했다. 그렇게 계속 아무 말이 없던 우주는 결국 한숨을 쉬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픈 예나를 두고가는건 마음에 걸릴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자신이 없는 사이에 위험한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어떡한단 말인가.
" 대신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 어짜피 연극 연습은 방과후니까. "
" 응! "
뭐가 저리도 기쁜건지, 상기된 얼굴로 해맑게 웃는 예나를 보며 우주는 조금은 귀엽다고 생각했다. 내가 미쳤지. 자신도 모르게 드는 생각에 놀란 우주는 고개를 새차게 흔든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 예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잡아주었다.
" 걸을 수 있겠어? "
" 으응 당연하지. 나 괜찮아. "
그럼 그렇지. 약한 모습 보이면 그게 강예나겠어? 누가봐도 어지러움이 가득한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입으로는 열심히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예나의 모습에 우주는 어련하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예나의 허리를 부드럽게 잡은 뒤 예나가 힘을 자신쪽으로 쏟을 수 있도록했다.
" 뜨거운물로 씻고 나와. 나는 그동안 아침 준비할테니까. "
" … 지금 별로 먹고싶지않은데. "
" 그냥 내말 들어. 아픈사람이 이것저것 따지면 되겠냐? "
" 그래도… "
" 강예나 "
" 알겠어 먹으면 될꺼 아니야 먹으면.. "
그렇게 잔뜩 볼맨 소리로 대답을 한 예나는 욕실로, 우주는 부엌으로 향했다.
*
그렇게 등교준비를 마치고 학교를 가기 위해 현관으로 향한 우주는 겉옷을 챙긴 뒤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 뒤늦게 문을 열고 예나가 나오자 우주는 예나에게 손을 뻗었다.
" 뭐.. 뭐야? "
" 가방 줘. 그리고 이거 입어. "
평상시와는 너무나도 다른 우주의 행동에 당황아닌 당황을 한 예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기 그저 우주가 내민 손을 바라보았다. 얘가 지금 뭐하는건가 싶던 우주는 결국 예나에게 다가간뒤 예나에게 옷을 입혔다. 그렇게 걷기도 잠시. 아래로 길게 뻗은 계단 앞에 도착하자 우주는 예나에게 말을 걸었다.
" 괜찮아? 내려갈 수 있겠어? "
" 정말이지. 나 진짜 괜찮다니까? "
" 그래 그래 너 괜찮은건 세상사람들 다 알고있거든? 암튼 넘어지지 않게 손잡아. "
" 아.. 으응.. "
그렇게 손을 마주 잡고 계단을 내려온 둘은 항상 전력질주를 하던 평상시와는 다르게 천천히 학교로 향했다.
*
" 어머 예나야 우주야. 왜이렇게 늦게 온거야? 정말이지 얼마나 걱정했다고. "
" 아 예나가 아침부터 감기기운이 있어서 천천히 준비하다 보니 늦어졌어요. 죄송합니다. "
" 아니야. 그건 그렇고 예나야 몸은 괜찮니? "
" 네. 선생님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
" 그래 얼른 수업 들어가고. "
마침 쉬는시간에 맞게 도착한 둘은 눈치를 보지않고 무사히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반으로 들어가자 예나와 우주를 반기는 것은 다름아닌 소미와 혜수였다.
" 예나야. 괜찮아? 등교하다 무슨일 생긴줄알고 얼마나 걱정했다구. "
" 으응 고마워 얘들아. "
그렇게 간단한 대화를 예나와 혜수 그리고 소미는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들어온 선생님에 의해 자리로 돌아가게되었다. 그렇게 한창 수업이 진행되던 와중에, 예나는 으슬으슬 몸이 떨리며 몸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곧이어 열이 오르자 이번에는 한기가 아닌 더움을 느낀 예나는 자신의 옆에 있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현기증에 엎드려 있던 예나는 창문틈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 강예나. 예나야. 일어나봐 "
' 이건.. 우주목소리..? "
얼마나 잠든거지. 잠결에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듯한 소리에 예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어째서인지 몸에 힘이들어가지않아 움직일 수 없던 예나는 그저 꿈뻑꿈뻑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 자는거 깨워서 미안한데, 잘거면 보건실가서 자 "
대답할 힘 조차 없던 예나는 그저 자신을 이끄는 우주에 의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잠시 예나는 점점 어두워지는 시야를 뒤로한 채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
예나가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익숙한 천장과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닌척하지만 잔뜩 걱정하는 기색을 얼굴에 보이던 우주는 예나가 눈을 뜨자 조금은 안심한듯 보였다.
" 일어났어? 여긴 집이야. 너가 학교에서 쓰러져버리는 바람에 그대로 같이 조퇴했고. "
어딘가 비꼬는듯한 말투였지만, 적어도 그가 걱정하고 예나를 걱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예나를 자리에 앉힌 우주는 미리 가져온 물컵과 함께 약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순순히 약을 먹은 예나는 약을 먹은 뒤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런 예나에게 이불을 덮어주던 우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역시 어젯밤에 옷을 가져다 주는건데. 미안하다. "
" 아니야. 왜 너가 미안해. 괜히 고집부린 내 잘못이지. "
" … "
" 우주야. 고마워. "
" 아.. 알긴 잘아네. 고마우면 앞으로 몸 좀 챙겨라. 너 때문에 이게 뭐냐? "
예상치 못한 감사의 표시에 당황한 우주는 얼굴을 붉히며 틱틱거렸다. 그런 우주의 모습이 우스웠던건지 킥킥대며 웃던 예나는 다시금 몰려오는 졸음에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우주는 손을 뻗어 예나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느리게 정리해주었다.
" 아프지마 "
" 응 "
" 감기 같은건 차라리 내가 걸렸음 좋겠는데. "
"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
" 그치만 그렇잖아. 체력도 몸도 약한 너보다는 건강한 내가 낫지않겠냐? "
" 너 지금 나 디스한거지! "
" 네에 네. 그런건 얼마든지 받아줄테니 일단 잠이나 자세요. "
" 으으 우주 너 진짜. "
한참동안 예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은 예나가 깊은잠에 빠져들고 나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그렇게 밤새 예나의 곁에서 예나를 지켜본 우주는 아침이 되어서야 잠에 들 수 있었고, 루다와 바바가 돌아오자마 본 광경은 같이 누워 자고 있던 예나와 우주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주는 예나의 감기가 다 나을때까지 일일이 따라다니며 예나를 보호했고, 어딜가든 겉옷을 챙겨 다니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