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은혼

[긴카구] 맞선

슈가펌킨 2019. 5. 19. 00:12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긴카구] 맞선

written by 슈가펌킨

 

 

 

갑작스럽게 당신과 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긴장감 제로의 동거. 당신은 이미 세상에 너무나도 물들어있는 아저씨였고, 나는 이제 막 세상을 알기 시작한 어린아이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자 오빠였다. 이 행성, 지구를 넘어 우주 어딘가에 있을 진짜 나의 가족보다도, 당신을 더 많이 좋아했다면, 그건 잘못된 것일까?

 

그저 하나의 태양이 되어 당신은 나를 비추어 주었다. 그 말에 모순이 되겠지만, 나는 언제나 당신의 그림자를 쫒았다. 당신의 그 넓은 등은 내가 가야하는 길을 알려주었다. 단순히 동경어린 시선으로, 당신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어린아이가, 홀연히 걷고있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연민을 느꼈을 때. 그때 나의 안에 자리하던 '사카타 긴토키'는 더 이상 아버지이자 오빠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남자로서, 당신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사람으로 내 안에 살기 시작했다.

 

좋은 결말을 바라고 감정을 품은적은 없다. 욕심을 가지기에는 너무나도 오랜시간을 함께했는걸, 항상 그런 생각이 들때면은 벽장문을 열고 한참을 쳐다본다. 이 감정이 벽장안에서 잠들어주기를. 오늘도 자장가를 부르며 벽장문을 닫았다.

 

*

 

똑똑-

 

" 사카타 긴토키씨 계신가요? "

 

장마가 겹쳐 내리는 소나기 탓에 의뢰인의 발길이 멈춘지 벌써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누군가가 무료하고 고요하던 집안의 정적을 깼다. 혹시 의뢰인인가? 기대가 가득한 얼굴로 긴토키를 바라본 카구라는 이내 반쯤 풀린눈으로 점프를 보고있던 망할 아저씨를 보며 작게 미소를 짓고는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러갔다.

 

문을 열자 눈앞에 있는 사람은 의뢰인이 아닌 신파치의 누나, 오타에였다.

 

" 누님-! "

 

" 어머! 카구라 오랜만이구나. "

 

비록 기다리던 의뢰인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도 훨씬 좋아하는 오타에를 본 카구라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오타에 역시 오랜만에 카구라를 만난것이 기뻤는지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미소를 띄며 카구라에게 인사를 건냈다.

 

" 누님 여기는 무슨일이냐 해? 혹시 신파치를 데리러 온거냐? "

 

" 아-니- 오늘은 긴상께 볼일이 있어서 왔어. "

 

*

 

" 그래서 지금 나보고 맞선을 보라는거냐? "

 

언제나와 같이 졸린 표정으로 쇼파에 앉아있던 긴토키는 맞선을 해보라고 제안하는 오타에의 얼굴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듯이 되물었다.

 

" 그럼 제가 한말이 뭐로 들리시나요 긴상? "

 

" 잠깐잠깐, 너 말이야 내가 능력이 없어서 여자를 못사귄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런겁니까? "

 

" 뭐. 너무 잘알고계시니 제가 할말이 없잖아요? 호호 "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독설을 뱉어내는 오타에에 긴토키는 더욱 얼굴을 구기며 이야기했다.

 

" 있잖아 이 긴상이 말이야 예전에는 진짜 핫했거든? 나 좋다고 따라다닌 여자도 많았거든? 지금 그런 긴상이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다니 눈물이 앞을 가리려고 합니다만? 헹 아무튼 이 긴상은 맞선같은건 필요없습니다- "

 

" 뭐 믿기진 않지만 과거는 그렇다고 쳐도, 지금은 그저 아저씨잖아요? "

 

" 윽 "

 

" 아무튼 뭐 강요하려는 생각도 없어요. 선택은 긴상, 당신의 몫이니까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그치 카구라야? 긴상도 정말 주책맞다니까? "

 

" 아.. 으응.. 긴짱도 참.. "

 

맞선? 맞선이라고? 카구라는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들은듯 맞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그렇다 저는 이제 막 성인이된 여자아이였고, 그에 반해 긴토키는 혼기가 꽉 들어찬 어른이었다. 어째서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걸까. 그가 평생 자신의 곁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언젠가 그 역시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은 그 사실을 받아드리려하지않았다. 당신이 평생 나의 곁에 있어주길 바래.. 당신과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니까..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아니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더라? 하나 확실한건 썩 좋아보이는 표정은 아니라는것.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해. 당신에게 이런 표정은.. 보여주고싶지 않은걸.

 

급하게 오타에에게 인사를 한 카구라는 도망치듯 집밖으로 걸어나갔다.

 

*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카부키죠의 거리에서 벗어나 다른 동네의 놀이터가 보일때 즈음에 카구라는 걸음을 멈추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더 이상은 뛰고싶지도, 그렇다고 돌아가고싶지도 않았다. 금방이라도 터질것같은 이 울음을, 이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카구라는 그네에 걸터앉았다. 아 더 이상은 무리-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카구라의 마음에도, 눈에도 비가 내렸다. 이 수많은 빗물들중 하나와 섞여 땅에 스며든 눈물은 그 어느때보다도 서러움을 가득 담고있었다. 이제까지 요리조리 피해다니던 현실을 한번에 마주한기분. 아니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나만이 당신을 평생 볼 수 있을거라는 이기적이고, 또 이기적인 나의 착각이 오늘에서야 자만하던 나를 벼랑끝으로 몰아세웠다. 내가 한 생각인데 누구를 탓하랴. 하지만 그렇게 어영부영 넘어가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마치 바늘로 찌르는듯이 아파왔다.

 

누군가 들을까봐 엉엉 울지도 못하고, 그저 소리를 죽이며 훌쩍이는 자신이 너무나도 애처로웠다. 아직 고백도, 아니 표현조차도 아무것도 해보지못했는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소녀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못하고 여러곳을 방황했다. 이젠 어떡해야하지? 돌아가도 되는걸까? 마취제와 같았던 현실도피가 끝나자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자신을 괴롭혀왔다. 깨달아 버렸는걸. 자장가를 불러주며 옷장속에 잠재워놨던 나의 마음을.

 

더 이상은 당신을 보호자로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이전과 같은, 당신에게 보호받아야하는 어린아이인척 연기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떻게해야할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해 긴쨩?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내리던 소나기가 그치고. 우중충한 먹구름이 하늘을 드덮을즈음에, 오랜 생각의 기차도 종착지에 도착했다. 고심끝에 내린 결론은 당신의 곁을 떠나는것. 이유는 충분했다. 우주로 수련을 가는거야! 다음에 돌아올땐 더 멋진여자가 되어있을게.

 

소녀가 꾸었던 꿈은 너무나도 황홀해서 그저 꿈으로만 간직하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나는 당신의 곁을 떠나야만해.

 

*

 

" 후우- "

 

크게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레 문을 밀어젖혔을때, 카구라는 더 이상 발걸음을 내딪을 수 없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현관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에 나는 얼어붙어버렸다. 아니 이러면 안되잖아. 카구라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 아 잠깐 나갔다 왔는데.. 비가와서 다 젖어버렸다 해! 그보다 긴쨩 나 말이야.. "

 

" … "

 

분명 긴 여행을 갈거라고 이야기해야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슬픔과 분노가 가득 담긴 당신의 눈을 보고있자니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굳게 닫힌 입을 대신하여 주책맞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울면안되는데.. 이미 제어권을 잃은지 오래였다.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출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엉엉 소리내어 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 나는.. 긴짱이.. 너무 좋아 흡 "

 

나의 갑작스런 고백에 당황할만도 했을텐데. 한걸음 두걸음 나에게 천천히 다가온 당신은 이내 부드럽게 나의 등을 감싸안아주었다. 그리고는 어루어 달래듯이 천천히 등을 쓸어내리며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 나도. "

 

아아- 이 얼마나 잔인하고 또 달콤한 말이던가. 세상 어느때보다도 기쁜 순간인데, 이 바보같은 눈물은 멈출생각조차 하지않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나는 긴짱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 맞선같은거 보지마라 해 "

 

*

 

오랜 벽장문을 열고 잠들어있던 감정을 깨운다.

 

고백. 아주 성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