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이런 영웅은 싫어

[모래다나] 밤하늘

슈가펌킨 2019. 5. 19. 00:09

 

[모래다나] 밤하늘

written by 슈가펌킨

 

 

주황색 물감을 흩뿌린듯 하늘에 떠있는 구름마저 붉게 물들이는 황혼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끊임없이 자신을 주장하며 빛나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과 그들로 이루어진, 마치 비단과 같은 밤하늘을 마주하게된다.

 

또 다른 우주.

 

밤하늘은 너무나도 어두워 그 끝이 어디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은 때때로 밤하늘이 밝게 만든다. 빠져들것만 같은 칠흑같은 어둠, 그리고 눈이 멀것같이 찬란하게 빛나는 별.

 

어느 무엇과도 조화를 이룰 수 없을것만 같았던 것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밤하늘이라 불리우는 도화지속에서 균형을 이루어간다.

 

너 역시 그렇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새하얀, 어딘가 찐따같은 나와는 반대로 너는 머리부터 발 끝가지 검다. 사람을 색깔에 비유하다니... 어딘가 미친것 같아 보일지 몰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고있노라하니 머릿속을 가득 매우는 것은 다름아닌 너이다.

 

언제나 빛이난다.

 

비록 그것이 나의 눈에만 보이는 모습일지라 하더라도.

 

다나

 

다나

 

다나

 

언제나 속으로만 되새기던 말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너의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어 이름을 잊을까 두려워

 

나는 항상, 언제나 쉼없이 너의 이름을 부른다.

 

무겁게 가라앉은 밤공기에 마음이 놓인것일까?

 

아님 너를 닮은 밤하늘에 홀린것일까

 

어째서인지 닫혀있던 두 입술을 힘겹게 비집고, 끝끝내 나온 말은

 

지금도 너의 생각에 잠겨있다는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름아닌 너의 이름이었다.

 

그래, 좋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것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과 같은 감정은 단순한 애정과는 다른것같았다.

 

그게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 역시 내가 해야할 일임을 되내어본다.

 

 

*

 

 

" 하하. 안녕 다나! 오랜만이네? "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공식적으로 나이프가 잠적한것은 꽤나 오래 전 일이지만,

 

이렇게 스푼과 만난것은 자주 있던일이었기 때문에, 그 점을 고려했을때에는 그리 오래된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렇지 못했다.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이 두눈에 너를 끊임없이 새기는 동안에 조차도

 

자꾸만 너를 그리워하게된다.

 

그 순간만큼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닫히는 눈꺼풀이 세상에서 제일로 미워진다.

 

때문에 너와 떨어져있는 시간은 마치 상사병에 걸린애마냥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매일 밤 혹은 꿈에서조차 너를 그린다하여도, 역시나 네가 보고싶은 마음은 변하질않는다.

 

" 오늘 아침부터 되는일이 없더니. 역시 너를 만날 징조였구나보군. "

 

얼굴표정 하나 변치 않고, 아니다 조금은 짜증난것 같은 표정으로

 

너는 아무렇지 않게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 윽. 다나 그렇게 말하면 모래는 슬퍼… "

 

" 쯧. 그러냐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일이네. "

 

역시 너와 나의 관계에선 이게 최선이겠지.

 

알고있었다. 너무나도 혹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때로는 그것들이 돌아와 차갑게 웃으며 나를 짓밟는다.

 

나는 그 사실들이 오늘만큼은 거짓이되기를 소망해본다.

 

" 걱정하지마. 오늘은 오랜만에 얼굴만 보러 온거니까. "

 

정말이었다. 나의 말 속에서 은연중에 드러난 진심이, 너를 향한 나의 모든 마음을 보여주고있었다.

 

" 지랄. 그럼 그냥 곱게 가라. 나 지금 몹시 피곤하거든 "

 

" 어째서? 아직 대낮인데? "

 

밤에 만나는것 역시 좋은 선택이었겠지. 끔찍할정도로 너와 잘 어울리니까.

 

하지만 그렇다가는 감당이 안될것만 같았다. 밤하늘 아래라면 너가 더욱 빛이 났을테니까.

 

지금도 충분히 너로인해 눈이 멀것만 같았다.

 

그래. 지금 널 만나러 온건 다 나를 위해서야. 절대 너를 더 빨리 보고싶었던게 아니야.

 

되지도 않는 변명을 머릿속으로만 되풀이한다.

 

" 너같이 세상에 불만있는 것들 때문에 야근하고 이제서야 퇴근하는길이다. 이정도면 알아듣겠지? "

 

" 하하. 친절도하셔라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주다니, 모래는 기뻐. "

 

" … "

 

찌푸린 얼굴 역시 아름답다. 뭐랄까 화내는 얼굴과는 다른 매력이 있달까…

 

" 그래. 알겠어 그렇게 화내지 말라구! 오늘은 이만 돌아갈테니까. "

 

더 보고싶다. 이 눈에, 이 귀에, 이 머리에 너를 좀더 새기고싶다.

 

하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는게 맞겠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너에게 인사를 한뒤 유유히 그 곳을 빠져나왔다.

 

 

*

 

 

또 다시 나는 이곳 창가에서 커다랗게 뜬 달을 보고있다.

 

너의 얼굴이, 너의 목소리가 자꾸 내 주위를 맴돈다.

 

" 손을 뻗으면 닿을거 같단 말이지… "

 

그 정도로 생생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제는 더 이상 너 없이는 나의 인생을 말할 수가 없다.

 

모순덩어리

 

어둠속에서 빛나는 너나, 그런 너를 좋아하는 나나

 

생각하면 할수록 모순투성이다.

 

짜증이난다. 이럴려고 나이프 보스를 한게 아닌데.

 

물론 너를 알게된 계기도, 너와 말을 나누게된 계기도

 

모두 내가 너와 적대적 관계에 있었기에 가능했던일이다.

 

애들 장난과도 같은 이런 활동은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었다.

 

또한 나를 모르는곳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은둔자 신세에, 죽은사람 취급까지. 이런 삶을 살아가는동안 불편함이 없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것이다.

 

하지만 이런 힘듦을 견딜 수 있을만큼 너는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다.

 

만약 내가 나이프가아니고 너가 스푼이 아니었다면,

 

내가 너에게 쫒기는 신세가 아니고, 주먹을 맞대야만 하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그때는 어떘을까?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다.

 

어쩌면 그때는 너와 만나지 못했을꺼라는 불안감과 혹은

 

마음편히 너를 좋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만족감이 오늘도 나를 괴롭힌다.

 

보고싶다. 너의 얼굴이

 

듣고싶다. 너의 목소리가

 

오늘도 이렇게 나는 너의 모습을 끊임없이 되뇌인다.

 

 

*

 

 

" 까-꿍! 안녕 다나? 아름다운 밤이지? "

 

원래라면 창가에 앉아 너를 생각하고 있을때였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밤마실도 나쁘지 않겠지. 발걸음이 향한곳은 역시나 너였다.

 

" 하… 만난지 몇일이나 지났다고 이렇게 친히 또 행차해주셨을까? "

 

" 에… 하지만 벌써 한달이나 지났다구. "

 

" … 시간 참 빠르군 "

 

" 오늘은 뭔일을 벌이러 온게 아니야. "

 

" 그래? 그럼 그대로 뒤돌아서 직진해. 집으로 꺼져버려. "

 

" 아이참 다나도 너무행. "

 

" 여기서 바로 체포당하고싶냐? 조각조각나서 해외여행 하고싶다 이건가? "

 

" 하하하. 해외여행이라… 말은 고맙지만 사양할게. "

 

" 쯧 속 편한새끼 "

 

" 같이 밤산책이라도 어때? "

 

" 이제까지 내가 한 말들은 들리지도 않나보군. 이리와라 그 쓸모없는 귀 떼주마. "

 

" 다나는 나를 함부로 할 수 없어. 안그래? "

 

아무리 화가나게 만들어도, 언제나 적당히 봐주다가 돌려보냈다.

 

정확하게 그 이유가 뭔지는 알 수 없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충분히 이용가능하다.

 

" … "

 

" 정답인가보네. 자 그럼 같이 산책하자. "

 

" 싫다그러면? "

 

" 음… 나는 조용히 돌아가려했는데… 어쩔 수 없지. "

 

" 하… 그래 니 좋을데로 다 해먹어라 "

 

의외의 대답이었다. 끝까지 거절할줄 알았는데…

 

물론 거절당하면 그냥 조용히 돌아가려고했다. 하지만 다나 너가 그렇게 나오니까

 

자꾸 욕심이 나잖아.

 

 

*

 

 

오랫동안 붙잡아 놓지 않을게. 너무 귀찮게도 하지않을게.

 

지금 이렇게 나란히 앉아있다는것 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벅찬일이니까.

 

" … 사람 앉혀다 놓고 뭐하는짓이냐. 아무말이라도 좀 하던지. "

 

" … 그치만 전혀 예상못한 일이란말이야! "

 

" 그럼 너는 아무 생각도 없이 놀자고한거냐? "

 

" 음… 정답? "

 

" 하… 너는 웬만하면 입열지마라. 듣는사람 속터지니까. "

 

" ...다나 "

 

" 왜. "

 

" 다나 "

 

" … "

 

" 다나 "

 

" 사이코새끼가 뭐하는 짓이야. 저주라도 건거냐? "

 

내가 나지막히 다나의 이름을 부르자 너는 열이받는듯 나의 멱살을 잡는다.

 

" 이쁜이름이네 "

 

내가 해줄 수 있는말은 여기까지야. 그 이상은 할 수 없어.

 

너에게 건네는 작은 진심속에 커다란 진심을 담는다.

 

이렇게나 거리가 가깝다니… 다문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는 실소를 가까스로 막아낸다.

 

더 이상은 무리다.

 

내 멱살을 쥐고있는 너의 손을 잡으며 너에게 말한다.

 

" 그럼 다음에 또보자. "

 

다음에 또보자. 은연중에 다음을 기약했다. 그럼 나 또 와도 되는거지?

 

 

*

 

너와의 짧은 데이트를 마친 뒤 다시 돌아온건 역시 창가였다.

 

넓은 우주와 아름다운 별들

 

나는 다시 넋을 놓고는 너를 생각한다.

 

 

머릿속으로 다시 너와의 만남들을 그리고 있던 도중

 

문득 한가지를 알 수 있었다.

 

역시 너를 향한 나의 감정은 단순한 애정이 아닌

 

사랑인가보다.

 

무의식적으로 알고있었던것일까? 그토록 찾던 답을 얻었음에도 딱히 기쁘지도 또한 놀랍지도 않구나.

 

그래도 너에 대해 조금 더 확신을 가졌으니. 오늘은 그걸로 좋다.

 

평상시와는 달랐던 너와의 대화와 우연히 맞잡은 두손을 나는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오늘 꿈에도 나와주기를 바라며, 저 높이앉아 나를 바라보는 별들을 자장가 삼아 눈을 감는다.

 

 

*

 

 

밤하늘은 너무나도 깊어서, 심해와 같이 빠져들어갈것만 같다.

 

하지만 그게 너의 품이라면, 혹은 그 하늘 끝에 니가 있다면

 

얼마가 걸리든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게.

 

오늘도 밤하늘은 고혹할정도로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난다.

 

언젠가 그 아래에 서서 너와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너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