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다나] 무제
사람은 누구나 직감이란것을 가지고있다.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무언가를 마주하기 전에 느끼는 직감은 때론 무시하기 힘들정도로 정확하다. 스푼의 서장인 다나는 직감에있어서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모습을 보이곤했다. 그리고 다나는 지금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있다. 자신의 본능이, 직감이 말하고있다. 길게 끌어오던 무엇인가가 오늘에서야 끝을 볼것이라고.
[모래다나] 무제
written by 슈가펌킨
" 서장님! 나이프가 나타났습니다. "
" 후… 지금 지원가능한팀은? "
" 그 놈들이 아주 작정하고 일을 벌인것같아요! 대규모 화제에 폭팔까지 아주 난리가 아닙니다. "
" 알겠다. 지금 당장 출동하도록하지. 피해상황은? "
" 화재와 폭팔로 인한 사망자수는 대략 6~70명정도라고 합니다. 또 부상자수는… "
나이프가 이런식으로 스푼에게 빅엿을 던져주는건 자주는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 있는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무언가가 달랐다. 사고를 내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분명 그렇지만…
" 서장님? 듣고 계세요? 방금 나가군에게 전화가왔습니다. 폭팔이 같은곳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고있는 모양이에요. "
' 같은곳..? '
" 넌 그 쪽으로 지원가봐. "
" 네? 하지만 나이프를 상대로 혼자 싸울순없어요. 그건 서장님도 잘 알고계시잖아요. "
" 아니. 오늘은 나이프 전체가 아닐꺼야. 분명 소규모다. "
" 그게 무슨말이에요? "
" 아무튼 넌 거기로가봐. "
" 서장님! 잠시만요! 서장님! "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다나는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귀능을 뒤로한채 스푼건물을 나왔다. 나이프와 오랜기간을 대치해오면서도, 이런식으로 일손이 부족하게 된것은 처음이었다. 먼저 도발을 하는 범죄자들 주제에 꽤나 준비하는게 귀찮았던 모양인지 여태까지는 소규모로 여러군데를 폭파시키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좀 더 폭팔의 규모가 컸다. 이는 분명 한 곳에 투입되어야 하는 스푼의 인력을 늘리려는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점이있다면 같은곳에서 연속적으로 폭팔한다는 점인데… 확신할순 없지만 아무래도 나이프 역시 사람의 수가 부족했던게 틀림없다. 적은수로 일을 준비했기때문에 많은곳이 아닌 거의 동일한곳에서 사건이 일어난거겠지…
다나는 점점 커지는 불안감을 무시하며, 귀능이 알려준곳으로 달려갔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익숙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자신과 스푼의 오랜 숙적, 나이프의 보스 백모래. 다나는 잔뜩 경계를하며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먼저 공격을 할 기미가 보이지않자. 다나는 빠르게 상황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 폭탄같은걸 설치한 흔적은 보이지않는다. 건물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는것같진않군. 그럼 지금 혼자라는 의미인가? 하지만 어째서지? "
스푼과 싸우기위해서 일시적으로 따로 다니는것 외에는 일반적으로는 백모래의 부하인 오르카와 메두사가 백모래의 곁을지켰다. 하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그 둘의 모습이 보이지않았다. 물론 다나의 입장에서는 그편이 훨씬 유리했지만, 상황으로만 볼때에는 말이되지않았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이곳으로 오게한것이라면, 싸울준비정도는 되어있을텐데,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않았다.
" 평상시에 데리고 다니던 똘마니들은 다 어디가고 혼자남았냐? 내가 우수워? "
대치상황에서 속을 들키면 끝이다. 때문에 다나는 최대한 비꼬는 어투를 사용해서 백모래를 떠보았다. 그러자 돌아오는건 대답이 아닌 웃음이었다. 아니 비웃음이라고 해야할까?
" 큭큭큭큭… 그 녀석들? "
다나와 마주했던 그 때부터 백모래는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표정을 들키지않으려는걸까 아니면 단순히 방심시키려는 계략일까. 그 속을 알 순 없지만 확실한것은 백모래의 어떠한 표정도 볼 수없다는것이다. 웬지모를 위화감에 다나는 섣불리 나서지않고 가만히 서서 백모래를 주시했다. 어딘가 정신이 나간것같았다.
' 살의가 전혀 느껴지지않는군. '
콰앙-
공격할기미가 전혀 보이지않자, 다나는 먼저 백모래에게 달려들었다. 나사하나가 빠진것같은 백모래였지만 오랫동안의 전투경험을 무시할순없었다. 백모래는 본능적으로 다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했다. 다나와 백모래의 사이가 가까워지자 다나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것은 다름아닌 백모래의 눈이었다. 어째서인지 붕대가 감겨져있지않은 눈은 초점이 없었다. 어딘가를 보는지 알 수 없을정도로 공허한 눈, 그 눈에는 바로앞에 마주하고있는 다나 자신도, 또는 뒤의 배경도 어느 하나 담고있지않았다. 반짝이던 두 눈은 이상하리만치 색이죽어 생기라곤 찾아볼수가 없었다.
' 그렇다는 말은 기본적인 방어밖에 할 수 없다는건가. '
아니. 확정짓기에는 너무 이르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었다. 때문에 다나는 한걸음 뒤로 잠시 물러났다. 그 때였다. 혼자 중얼거리던 백모래가 고개를 들어 초점없는 눈으로 다나를 응시했다. 그렇게 잠깐동안 다나를 보던 백모래는 느리게 말을하기시작했다.
" 단지 나는.. 사랑을 하고싶었어.. 그래.. 사랑.. "
" 닥쳐. 그깟 사랑때문에 무슨일이 벌어진건지 알기나해? "
" 아니.. 아니야… 아니라고! 너에겐 하찮은 사랑일진 몰라도! 나에겐 전부였어! 태어나면서부터 천애고아였던 나에게! 믿었던 선생님에게 배신을 당한 나에게! … 내게 부족했던건 사랑이었어. 어떤 형태로든… "
" … "
"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갈증이나. 큭큭.. 그래 처음부터 잘못된건 하나도 없었어.. 유일한 오점이 있다면 널 만난거겠지. 좋아 이제 끝을 보자. 나의 모든것을 바쳐도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 없다면, 이제 끝을 내는거야! 난 할만큼했어 다나! 너도 오랫동안 봐왔겠지. 난 이제 너무 지쳤어. 그리고 그 끝에는 너와 내가있어 다나. 그러기 위해 널 불렀으니까. "
' 날 만난것? '
정신이 나간것이 확실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백모래를 바라보고있자니 다나는 머리가 아파오는것만 같았다. 끝을보자고? 좋아. 내가 평생을 바라던일이다. 쥐새끼마냥 도망치는 꼴. 나도 이제 슬슬 지겨워진참이었거든, 쥐새끼든 개새끼든 뭐든 원한다면 내 손으로 끝을 내주지. 뭐가 그리 급한건지, 말을 토해내고 숨을 몰아쉬는 백모래에게 다나는 주먹을 내리 꽂았다. 피할 수 없었던건지, 아니면 피하지 않은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나의 주먹은 백모래에게 정확하게 명중했다.
' 이 정도로 죽을놈이 아니지. '
콰앙-
다나는 다시 한번 백모래에게 주먹을 날렸다.
쿨럭-
백모래는 힘겹게 숨을 쉬며 피를 토하고있었다. 하지만 뼈까지 미친놈인지 백모래는 미소를 지었다. 다나는 그런 백모래의 미소를 보면서 기분이 나쁘다는듯 혀를 찬뒤 입을 열었다.
" 그래 어디 들어나보자. 니 똘마니들은 다 어디갔냐? 나이프가 사멸의 위기에 처했는데도 오지않다니. 어지간히 부하 교육을 잘못시켰나보군. "
" 크큭… 메두사랑 오르카는 내가 죽였어. 헉헉.. 이 손으로 직접.. "
뭐? 다나는 백모래의 입에서 나온 말을 순간 의심했다. 내 귀가 잘못된건가? 자의든 타의든 어쨌든간에 수년동안 뜻을 함께하던 동료들이다. 그런데 그들을 죽였다고? 그것도 직접? 다나는 더 이상 백모래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싶지않았다. 원래부터도 알 수 없는 놈이었지만, 그래도 잘못미쳐서 그런가보다 하며 약간의 동정심정도는 가지고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거형태이다. 비록 방금전까지 가지고있던 불쌍하다는 생각도, 백모래의 말을 듣자마자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듯이 눈녹듯 사라졌다.
더 이상 봐줄필요는 없겠군.
" 그래 그게 니 유언이냐? 마지막으로 발악이라도 해보던가. 너의 그 개소리 내가 기억하마. "
" 크큭… 큭큭큭… 흑흑...흑.. "
백모래는 웃는듯 싶더니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죽는게 두려워서? 아니면 이제까지의 모든 일들이 후회되서? 만약 후회되서 그런거라면, 만약 그런거라면 좀 더 일찍 말하지 그랬냐. 그랬더라면 조금이나마 돌이킬 수 있었을텐데. 여자같이 이쁘던 얼굴은 눈물로 잔뜩 얼룩져있었다. 끝없이 우는 백모래의 모습을 보며 다나는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 그래 잘들었다. "
콰앙
이 정도면 진짜 죽었겠지. 다나는 마치 하나의 그림같이 이리저리 피가 튀어있는 바닥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백모래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때였다. 아주 작은 소리지만, 무언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아직도 안죽은건가? 다나는 주먹을 쥐고는 백모래를 쳐다보았다.
" 적어도… 헉.. 너에게는… 꼭.. 말하고.. 싶었..는..데..흑흑.. "
다나는 쥐었던 주먹을 피고는 팔을 내렸다. 백모래는 말을 마친 뒤 축 늘어졌다. 이제 끝난거겠지. 다나는 멱살을 쥐고있는손이 아닌 반대쪽 손을 백모래의 코에 가져다댔다. 그러고는 다시 건물밖으로 걸음을 돌려 향했다.
' 말하고 싶었는데 라.. 무슨 말이었을까. '
이제 와서 궁굼해봐야 소용없겠지. 더 이상 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장본인은 이 세상엔 없으니까.
하지만 다나는 듣지 못했다. 백모래가 죽기 직전 자신의 모든 힘을 쥐어짜낸 목소리로 한 마지막 말을
' 내가 좋아하는건 너야. '
다나는 알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백모래의 눈빛이 달라졌었다는것을.
*
" 서장님! "
" 아. 그래 이것좀 받아봐라. "
다나는 자신에게 뛰어오는 귀능을 보더니, 잡고있던 멱살을 풀고는 손을털며 말했다.
" 진짜 백모래인가요? "
" 그래. "
" 어디 다치시진 않은거죠? 나머지 놈들은요? "
" 이미 죽었다. 이거 당장 스푼에 보내서 조사하고, 보고서는 나한테 넘겨. "
" 아. 알겠습니다. 어디가시게요? "
" 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간다. 마무리되면 연락해. "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운건 어째서일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