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이런 영웅은 싫어

[일호다나] 마피아

슈가펌킨 2019. 5. 18. 23:36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양면을 갖고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흔히 양날의 검이라고 한다.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명과 암, 백과 흑 그리고 빛과 어둠. 흔하디 흔한 거리일지라도 태양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그제서야 그 숨은 모습을 드러내곤한다.

 

마피아.

 

빛을 등지고 어둠속에 자리잡으며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는 마피아라 칭한다. 그들의 무대는 이탈리아. 그 중에서도 시칠리아 지역에서 가장 활기를 띄고있다.

 

어느 누구도 믿어선 안되며,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오늘도 시칠리아의 낮의 거리는 활기차고 밤의 거리에는 붉은 선향이 가득하다.

 

 

 

[일호다나] 마피아

written by 슈가펌킨

 

 

 

똑똑-

 

일호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책을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 시계는 벌써 12시를 가리키고있었다. 가족들은 모두 다른지역에 있었고, 그렇다고 자신의 집에 근시일내로 방문하겠다는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지? 잠시 고민을 하던 일호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문가로 다가갔다.

 

" 누구세요? "

 

" … "

 

마치 누가 있었냐는 듯 아무런 대답이 없는 문을 바라보며 일호는 자신이 잘못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잠시 작지만 희미하게 들려오는 낯선 음성에 일호는 귀를 기울였다.

 

" 으윽… "

 

분명 문앞에서 들리는 소리인데… 어딘가 아파보이는 음성에 일호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비릿한 냄새가 훅하고 밀려 들어왔다. 일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피라고. 문가에 쓰러지듯 앉아 벽에 몸을 기대고있는 한 사람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일호를 바라보았다. 짙은 흑발에 붉은 적안. 위협적이면서도 그 오묘한 조화를 보고있자니 일호는 넋을 놓을 것만 같았다.

 

" 잠...깐… 실례… "

 

마치 끊어질 듯 거친 호흡에 일호는 정신을 차리고 눈 앞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질퍽-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린것일까 문앞을 가득 적신 피를 보며 일호는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했다. 고개를 숙여 흑발의 사람을 안아올린 일호는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검은 머리에 대조되는 하얀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마치 한장의 도화지를 연상캐했다. 송글송글 맺혀있는 식은땀을 보며 일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는 엉겁결의 시간을 살아온 불사의 존재였다. 물론 의사로서 오랜시간을 살아왔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의사라니 마지막으로 메스를 잡아본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나는군.

 

" 이름 정도는 말할 수 있죠? "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는 소리만 가득하던 방안에 중저음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에 흑발의 사람은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 ...다나… "

 

" 그렇군요. 내 이름은 일호에요. 이제 그만 쉬도록해요 다나.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

 

상황으로 보나 뭐로보나 지금 자신은 그에게 있어서 매우 낯선 사람에 불과했다. 그것도 피를 잔뜩 끼얹은 낯선사람. 그런 자신을 거두어준 일호를 보며 다나는 놀라움을 느꼈다. 믿을 수 없는 눈초리로 일호를 잠시 쳐다보던 다나는 이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았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의식이 흐려지는 탓에 눈을 감아버렸다.

 

 

*

 

 

일호는 다나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찬찬히 전신을 살펴보았다. 다친 곳으로 추정되는 부분은 총 두곳. 어깨와 옆구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듯해보였다.

 

" 흐음… "

 

치료를 하기 위해선 상처난 부분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다곤 하지만... 일호는 낯선 여성의 옷을 이렇게 함부로 벗겨도 되나 잠시 고민했다. 고민 끝에 일호는 치료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야 자신은 의사였고, 지금 눈앞에 있는 부상자를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니까.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자 찐득하게 굳은 피가 눈에 들어왔다. 사용한 무기는… 총인건가? 핀셋을 손에 쥔 일호는 어깨와 옆구리에 박힌 총알 두개를 빼내었다. 애초에 다나를 죽이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는지 총알들은 급소를 조금씩 빗겨나가있었다. 뭐- 상대방 실력이 별로인건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일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향한 일호는 새하얀 천에 따듯한 물을 적신 뒤 조심스럽게 다나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 내었다. 그렇게 소독과 치료를 마친 일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 하아- 드디어 끝났구나. "

 

일호는 기지개를 편 후 집을 둘러보았다. 아니 근데 이게 웬걸 바닥에는 자신이 다닌 곳마다 피로 가득했다. 치료 다음에는 청소인건가… 일호는 앞을 가리는 눈물을 훔치며 대걸래를 집어들었다.

 

 

*

 

 

보글보글

 

무언가 끓는 소리에 눈을 뜬 다나는 낯선 천장색깔에 번뜩 정신이 돌아오는 듯 했다. 놀란 나머지 몸을 급하게 일으킨 다나는 상처부위에서 오는 통증에 입술을 깨물었다.

 

" 윽… "

 

" 제가 아무리 의사라지만, 다친 곳을 한번에 낫게할 수는 없답니다- "

 

다나는 익숙한 듯 낯선 음성에 천천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나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저 사람은 분명…

 

" 일호…? "

 

" 용케 기억해냈네요. "

 

자신을 비꼬는 듯한 말투에 다나는 눈을 찌푸렸다. 뭐가 웃긴건지 그런 자신의 반응에 킥킥 웃어 보이던 일호는 자신에게 다가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 그래서 이제 상황설명은 해주셔야죠? "

 

진실을 요구하는 일호의 물음에 다나는 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 손에서 시선을 땐 다나는 일호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 마피아. "

 

일호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다나에게 되물었다.

 

" 나는 마피아다. 흔히 알려진 그런 직업은 아니니까 낯선것도 이해해. "

 

" … "

 

" 어느 소속인지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일호. 당신 덕분에 내가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어. "

 

딱딱하게 각이 잡힌 말투에 일호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거 같고… 일호는 보글보글 끓고있는 스프를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뒤를 돌며 입을 열었다.

 

" 뭐- 마피아가 그쪽 직업이라면 내가 그만 둬라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 다친다면 다시 찾아와요. 한곳쯤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장소가 있음 좋잖아요? "

 

" … 그래 "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크게 뜬 다나는 친절한 그 한마디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마피아인데… 나와 엮겨봤자 좋은일은 없을텐데… 제 멋대로 수긍해 버리는 자신의 입술이 야속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일호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양면을 갖고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흔히 양날의 검이라고 한다.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명과 암, 백과 흑 그리고 빛과 어둠. 흔하디 흔한 거리일지라도 태양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그제서야 그 숨은 모습을 드러내곤한다.

 

하지만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다나는 오늘 깨닫게 되었다.